[오형규 칼럼] 정책 무능, '징벌적 손해배상'감이다

입력 2021-08-11 17:34   수정 2021-08-12 00:20

“몰라서일까, 알면서도일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정책의 배신》에서 던진 질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성공한 정부’이길 바랄 텐데, 국가시스템에 막대한 충격을 주지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정책들을 폭탄처럼 연이어 투하한 데 대한 의문이다. 그런 폭탄 투하가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새삼 궁금증을 더한다.

정말 몰라서였을까.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서슬 퍼렇던 재건축 2년 거주 의무화, 비(非)아파트 임대사업자 폐지 방침에서 슬쩍 후퇴한 것을 보면 정말 그럴 줄 몰랐던 듯싶다. 알량한 지식과 이념적 도그마로 강행했다가 전세대란에 기름을 부었음을 보고 나서야 화들짝 놀란 꼴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정권 금기어가 된 소득주도성장은 허명만 난 교수 출신 참모들에게 네다바이 당한 듯하다. 경제 작동원리에 깜깜한 정권이 소위 ‘적폐세력’과 반대로만 하면 될 줄 알았을 공산이 크다. 공무원과 공공알바만 늘린 일자리 참사, 주거 고통을 안긴 부동산 실정, 자가당착의 탈원전, 만인의 투쟁이 된 비정규직 제로, 자영업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최저임금 과속은 관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애초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뒤늦게 잘못된 걸 알고도 되돌릴 타이밍과 명분을 못 찾아서다. 만약 처음부터 알고도 그랬다면 사악한 정부겠지만 설마 그럴 리야.

4·7 재·보궐선거 참패 직후 ‘죽비를 맞았다’며 금방 달라질 것처럼 시늉을 하긴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또 도돌이표다. 국정을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대처할 실력이 부족한 데다 전문가를 배척하고 ‘우리 편’이 아니면 쓰지 않는 편협함 탓이다. 방역과 백신까지 다 꼬인 채 혼란에 빠진 것도 이유가 다르지 않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 선진국 소리까지 듣게 된 나라의 정부가 이토록 ‘정책맹(盲)·경제맹’인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1980년대 대한민국을 식민지·반봉건·독점·매판 자본주의로 규정한 이념서적만 탐독한 586의 한계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반성문에서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독재와의) 싸움에 승리한 이후 변화와 운영에 필요한 역량을 축적하고 발휘하는 데 부족함이 많았다.” 기득권이 된 자신의 세대가 “새로운 미래세대를 위해 준비하고 배려하고 양보해야 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느꼈으면 당장 그렇게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조국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듯, 여당이 변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진영 전체가 거대 생계공동체가 됐고, 권력과 기득권의 단맛을 보며 최소 2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는 암묵적 컨센서스도 있다. 국정의 절대기준이 ‘표(票)’이고, 표 되는 것이라면 뭐든 다하는 배경이다. 게다가 강성 지지층은 야당과의 타협 자체를 부정하며 ‘더 세게!’를 외친다. 그런 지지층에 구애하는 대권주자들의 공약이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아예 사회주의로 갈 기세다. 예선(당내 경선)의 ‘아무 말 대잔치’가 본선(대선)에 가면 달라지길 기대할 뿐이다.

이런 정권에 무소신·무능력으로 맹종부화한 ‘늘공(직업공무원)’들도 공범이나 다름없다. 야밤에 원전 관련 문서를 삭제한 ‘신내림 공무원’만이 아니다. 26번 부동산 대책을 짜는 동안 국토교통부 관료들이 그 파장과 문제점을 몰랐을까.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걸 몰라서 기획재정부가 통계 분칠에 급급했을까. 격차와 차별의 근원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깰 노동개혁의 절실함을 고용부가, 파국이 예고된 연금개혁의 시급성을 보건복지부가 몰라서 못본 체하는 것일까.

어느덧 다음달 6일이면 경제팀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가 재임 1000일이다. 이 정부에서 3년 가까이 경제팀을 이끈 그에게 ‘천일의 홍(洪)’이란 별명이 더해질 것 같다. 그 장수 비결을 보면서 엘리트 관료들이 정권 서슬에 입 닫고, 실세들과 척지지 않으면서, 자리 보전하고, 입신양명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숱한 정부 실패가 드러났음에도 반성과 변화 대신 변명과 남 탓뿐이니 국민은 기가 막힌다. 손대는 것마다 국민에게 고통을 안기는 정부라면 대국민 배임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그 피해는 자영업자,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세입자 등 집단세력화하기 어려운 약자들에게 전가된다. 나라의 주주인 국민을 괴롭히는 정권의 무능이야말로 여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징벌적 손해배상’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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