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 사태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평가해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꼭 이런 방식이어야 하는지는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신용은 금융과 자본시장의 핵심이다. 모든 거래가 신용을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정교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개인들도 신용카드 현금서비스·할부만 이용해도 신용 점수가 깎여 금융거래 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신용관리에 노심초사한다. 신용질서를 확립하는 게 금융의 본령인데, 특정 그룹에만 신용사면을 해주면 기존 연체자들과의 형평 문제 등 신용평가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당장 금융계에서 “정부가 복지차원에서 풀어야 할 일을 금융회사에 신용리스크로 떠넘기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이 정부 들어 유독 금융분야에서 반(反)시장적 행보가 잦다. 대통령은 지난 3월 “신용도 높은 사람이 저(低)이율을, 낮은 사람은 고(高)이율을 적용받은 구조적 모순이 있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지극히 당연한 금융 원칙을 모순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청와대는 전달과정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몇 달 후 마이너스통장 개설 때 고신용자에게 고금리를 물리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해당 금융사들은 통계 착시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불문가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당국이 만기가 돌아온 소상공인 대출을 강제 연장한 게 벌써 1년 반이고, 상장사들의 분기 배당과 공모가 산정에까지 개입하는 일도 당연하게 여긴다. 금융을 ‘딴 주머니’ 정도로 취급하는 ‘관치금융’ ‘정치금융’ 행태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여당 대선후보들은 한술 더 뜬다. ‘1000만원짜리 저금리 마이너스 통장’ ‘최고 금리 연 10% 제한’ 등 반(反)시장적 공약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여기에 정부까지 신용사면이라는 무리수를 꺼내들었으니 ‘선거용’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신용사회로 가는 길은 멀고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