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기업가치(밸류에이션) 평가를 두고 거품론이 일고 있다. 게임 '배틀그라운드' 개발사인 크래프톤이 상장 직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등 흥행에 실패하면서다. 공모가 기준 1000만원을 투자한 개인투자자의 경우 환산하면 상장 첫날에만 88만3000원(손실률 8.83%)의 손해본 계산이 나올 정도다. 특히나 지난해와는 다른 분위기에 공모주 투자 전략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공모주 열풍은 투자자뿐 아니라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까지 들쑤셔 놨다. SK바이오팜 상장을 시작으로 하이브(옛 빅히트), 카카오뱅크 등 공모주마다 돈이 몰렸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공모주 투자 열풍이 불었을 때 상장을 해야 공모가격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이를 달리 말하면 공모가가 시장의 가치보다 너무 높거나 낮은 경우 누군가는 손실을 본다. 공모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면 투자자는 단시일 내에 높은 수익을 얻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만큼의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공모가가 높게 책정되면 기업공개(IPO)에 참여했던 투자자는 공모가보다 떨어진 시장 가격으로 인해 투자손실을 본다.
반면 크래프톤과 같은 시기에 상장한 원티드랩은 기관 수요예측에서 1503.9대 1에 달하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2~3일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에서는 173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IPO를 성황리에 마치기도 했다. 당시 원티드랩은 크래프톤과 청약 일정이 겹쳐 흥행 우려가 있었지만 5조5000억원이 넘는 증거금을 모았다.
상장에 앞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은 '절대가치 평가방법'과 '상대가치 평가방법'이 있다. 절대가치 평가 방법 중 현금흐름할인법(DCF)은 현재 실적보다 미래 성장성으로 기업가치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될 수 있어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상대가치 평가방법에는 △주가수익비율(PER) △상각전 영업이익 대비 기업가치(EV/EBITDA)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매출비율(PSR) △파이프라인 대비 기업가치(EV/Pipeline) 비교 등이 있다. 통상적으로는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동종업계 기업의 평균 PER을 구해 할인율을 적용, 희망 공모가 밴드를 결정한다.
공모가 책정에서는 비교기업인 '피어그룹'이 매우 중요하다. 기업가치 산정을 위한 비교집단에 어떤 기업을 넣느냐에 따라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모가 고평가 논란도 피어그룹 선정에서 발생한다.
크래프톤은 상장에 앞서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시달렸던 이유로 '피어그룹'이 지적됐다. 크래프톤은 증권신고서 제출 당시 비교 기업으로 월트디즈니, 워너뮤직 등 글로벌 기업을 제시했다. 금융당국은 크래프톤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고 크래프톤은 희망 공모가 밴드를 10%가량 낮췄다.
크래프톤은 몸값을 낮췄음에도 공모가 거품론 여전했다. 게다가 중국 당국의 게임산업 규제 우려라는 '겹악재'까지 만나면서 투자심리는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크래프톤은 상장 당일 공모가(49만8000원)보다 낮은 시초가(44만8500원)를 형성했다. 현재 주가도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성종화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크래프톤은 공모가 범위 산정 시기만 해도 밸류에이션 고평가 잡음이 컸으나 이후 기대 신작 잠재가치가 설명되고 어필되면서 고평가 논란은 상당 수준 완화됐다"면서도 "상장 초반 주가가 부진한 것은 청약 부진에 수급부담 요인 때문"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의 흥행은 기관 수요예측 과정에서 예견됐다.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20~21일 진행된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희망밴드(3만3000~3만9000원) 최상단인 3만9000원으로 결정했다. 수요예측에는 기관 1667곳이 참여해 경쟁률 1733대 1을 기록했다. 카카오뱅크는 일반 청약에서도 최종 경쟁률 182.7대 1, 청약 증거금은 58조3020억원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수요예측과 일반 청약에서 부진했던 크래프톤과는 대비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최근 IPO 시장의 개인투자자 증가와 수요예측제도의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19년 상장한 공모주 수익률은 개인 청약률 200대 1 이하에서 9.6%이었지만 200~800대 1에서 31.2%, 800대 1을 초과하면 58.9%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공모주 수익률은 2011~2019년보다 더 높았다. 개인 청약률이 800대 1을 초과한 경우 86.7%였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 청약률이 IPO 공모주의 시장가격과 관련이 높은 이유에 대해 "개인투자자는 상장 직후 IPO 공모주를 매수하는 주체"라며 "상장주식 수 대비 매수하는 비율도 대체로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상장 후 오버행(대규모 매각대기 물량 출회) 부담이 없는지도 꼭 확인해야 한다. 시장에선 상장 후 주식 유통물량이 IPO 흥행 요인으로 꼽는다. 구주주들이 상장 후 보유하게 될 지분에 대해 보호예수 설정을 안하면 오버행 리스크가 주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따상'을 기록했던 초대형 IPO들의 경우 상장 직후 유통물량 비중이 30% 미만으로 낮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약 구주주들이 상장 후 보유하게 될 지분에 대해 100% 보호예수를 걸어둘 경우 상장 초기 물량이 쏟아져 주가가 급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성공적인 IPO 투자를 위해선 3가지 특징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청약 경쟁률이 높은 기업, 공모가가 상단을 초과한 기업, 유통물량 비중이 낮은 기업들이 상장 직후 수익률이 양호했다"고 분석했다.
공모주 청약을 통해 배정받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가 상장 후 일정 기간(통상 3~6개월) 동안 주가가 공모가보다 하락하면 증권사를 상대로 청약받았던 주식을 다시 되사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투자 원금까진 보호하지 않는다.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환매청구권은 보통 공모가의 90% 수준에서 주식을 되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모주 투자자 입장에선 큰 손실을 피할 수 있는 보호장치 역할을 해준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환매청구권은 기술 등 특례상장을 활용한 기업의 주가가 하락한다 해도, 최대 손실률이 10%로 제한되는 효과가 있다"면서 "환매청구권 부담을 져야 하는 주관 증권사가 공모가를 합리적으로 책정할 거란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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