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점 소속 택배기사과 CJ대한통운이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도 CJ대한통운이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했다면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2심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방법원 제5형사부(재판장 김성열)는 지난 11일 CJ대한통운 김천터미널에서 배송 업무를 방해한 택배기사들에 대한 업무방해죄 혐의와 관련 이같이 판단했다. 이 판단은 지난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라고 판단한 판정과 같은 맥락의 판결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판결이 대법원까지 이어질 경우 택배 회사들이 사업 지속 여부를 고민해야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은 과연 CJ대한통운이 이들의 사용자인지 여부였다. 노조법은 파업이 일어난 경우 '사업주'가 사업과 관계 없는 인력을 대체 투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노조는 이 법을 근거로 "CJ대한통운이 우리 사용자"라며 "대체인력을 투입한 것은 노조법을 위반한 행위이고 이를 방해한 행동은 정당하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사용자가 아니라면 대체투입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원은 1심을 뒤집고 택배기사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CJ대한통운이 사용자이며 대체인력 투입도 위법해서 이를 방해한 행동은 무죄"라고 판단한 바 있어서 유무죄 판단은 뒤집힌 셈이다. 그러나 사용자로 인정한 것은 1심과 같았다.
2심 재판부는 "회사(CJ대한통운)가 각종 지침이나 매뉴얼을 마련해 실시간으로 업무수행을 확인하고 지시를 내렸으며, 각종 지표로 평가도 했다"며 "터미널 운영 방식도 회사가 결정했고 집배점주는 권한·책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CJ대한통운이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의미다.
다만 1심과 달리 대체인력 투입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택배기사들이 화물을 끌어내린 행위, 차가 나가는 것을 막은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상처 뿐인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 중 한 건의 2심 판결이 이제 나온 것으로, 하반기에 나올 나머지 2심 네 건도 결론이 엇갈릴 경우, CJ대한통운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서 결론이 이번 판결내용대로 확정될 경우 택배기사들은 CJ대한통운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도 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판결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들의 사용자인가'를 다루는 만큼 CJ대한통운만의 문제도 아니다. 하청업체들을 관리하는 기업들이 모두 CJ대한통운 사건을 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하청 근로자의 사용자가 원청이라고 판정을 내리면서 업계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이번 판결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6월 중노위 판정을 직접 언급·인용하기도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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