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계절이 본격 도래했다. 5년마다의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 선거는 유기체처럼 연속되는 정부를 경영할 ‘5년짜리 전세 세입자’를 정하는 게임이다. 중요한 행사지만, 본질은정무직 공무원을 투표로 뽑는 것이다. 그런데 매번 너무 요란하다. 사회적 퇴행을 걱정할 정도다. 토룡부터 이무기까지, 주자들부터 어깨에 너무 힘을 줄뿐더러 유권자들도 5년 세입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주문한다. 많은 문제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여전히 정치 과잉이다. 경제발전과 사회의 성숙, 문화적 다원화, 국제화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 선거 과정에서 너무 잦다. 본선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도 그렇다.
흔히 (한국의 유권자들은 착하고 훌륭한데) 정치인이 문제이고, 저급 정치가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넘치는 포퓰리즘과 수리로 변하는 정당과 후보 지지율, 앞서 나타난 여러 선거행태를 보면 동의하기 어려운 지적이다. 문제는 유권자에 있는 것이다. 유권자가 나라살림이야 어떻게 되든지, 경제발전은 어떻게 되든지, 내게 유리한 것을 찾고 있지 않나. 당장의 작은 손익에 왔다 갔다 하니 눈치 빠른 정치인들이 이에 부응하고, 이를 부채질 하는 것이 아닌가.
여야의 후보들 주장을 다 논평하자면 끝이 없다. 워낙 엉터리가 많고, 하나하나 논평할 가치가 없는 것도 적지 않다. 적어도 생뚱맞은 주장이나 경제 원리에 맞지 않은 공약을 내더라도 ‘어떻게’는 설명해야 자기완결형 논리구조는 갖출 텐데, 기본이 안 된 게 많다. 그 가운데 ‘어떻게’ 가운데 재원 문제는 외면한 채 돈을 쓰겠다는 대표적 주장 몇몇에 주목해본다. 이미 집권한 여당 주류들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주목할 만하다. 퍼주기 식 포퓰리즘 주장인데 돈 문제, 재원에 대해서는 언급을 않은 것들이다.
여당의 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 예비 후보의 ‘전국민 주치의’ 도입 역시 돈 얘기는 없다. 의사 양성이 하루 이틀, 일이년에 되는 일도 아닌데 전 국민에게 주치의를 배정한다는 게 현실성 있는 말인가. 의사들이 웃건 말건 마이웨이라는 것인가. 설마 갈수록 재정이 악화되면서 쌓아둔 기금이 곧 고갈되는 건강보험에 이것까지 얹자는 것인가.
총리까지 지낸 정세균 예비후보는 280만 가구 공급으로 집값을 2017년까지 되돌리겠다는 공약을 냈다. 실현성 가능성을 따지기에 앞서 총리로 근무했을 때는 뭐 했나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련의 헛발질 집값 대책은 그가 총리로 재직했을 때도 남발됐다. 도심의 학교에 5층까지는 교실, 6층부터는 주거공간을 넣는다는 환상적인 내용도 있다. 그런 학교에 학부모들이 아이를 보내려 할까. 그 보다 정세균 본인은 아래층이 소란스러운 복합 건물의 6층에서 살 생각이 있으신가. 임대주택 60만호 지을 예산은 확보할 수 있나.
그러면서 서로 엉터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정세균 예비후보가 이재명 공약인 역세권 30평대 100만호 건설 및 월 임대료 60만원 공급론에 대해 "지을 땅이 없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고 한게 대표적이다. 그런 사례는 더 있고, 선거전이 치열해질수록 잦아질 것이다.
‘정치인도 나쁘지만, 실은 유권자가 더 영악하고 저급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우려면 국민들부터 변해야 한다. “좋은 얘기 같기도 한데, 돈을 얼마나 들어가는 것이며, 지속 가능한 제도가 되려면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고 묻고 다그쳐야 한다. 얼마라도 제 지갑, 제 가족 통장 계좌에서 돈을 내 저 그럴듯한 정책을 하겠다는 정치인이 있기는 한가. 선거 때면 논설실은 더 바빠진다. 머리도 더 아파진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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