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어린 시절 어머니가 하루 8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라며 문을 걸어 잠그셔서 원망도 많이 했지만, 나중에 이해하게 되었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신 분은 어머니라는 것을요" -2019년 음반 '마더' 기자간담회 中 소프라노 조수미의 발언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를 키워낸 어머니 김말순 여사가 지난 8일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평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조수미. 엄격하고 혹독한 교육을 받은 탓에 어린 시절 어머니에 서운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으나, 유학 생활 고난의 시간을 맞을 때면 항상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가 어머니였다며 여러 차례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대다수 자식이 그렇듯, 자신의 성공에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마음 깊이 느낀 탓일 겁니다. 경제적 지원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자신의 딸을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성장시키기 위해 어머니가 감내해야 할 일들은 적지 않았죠. 김말순 여사는 남편의 별세로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을 당시에도 조수미에게 장례식 참석 대신 프랑스 파리 공연을 마치라고 연락한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힘겨운 순간에도 누군가의 딸이 아닌 평생 무대 위 예술가로 살아가야 할 조수미에게 관객들과의 약속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새긴 셈이죠.
그러나 '어머니'라는 짐을 내려놓는 순간 김말순 여사도 연약한 여인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앞에서 강한 말을 던지면서도 뒤돌아선 더 좋은 말을 해주지 못해 아쉬워하고, 혼자서 그리움과 고통을 견디는 일상을 반복하는 게 모든 어머니의 숙명처럼 여겨지듯 말이죠. 자식의 행복과 성공만이 어머니가 바라는 유일무이한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조수미가 많은 이들에게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각인된 작품인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대표곡 밤의 여왕 아리아를 이 시점에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매일 조수미에게 "한 남자에게 종속돼서 사는 게 아니라 세계를 돌면서 만인의 연인인 예술가가 되어라"는 말을 남겼다던 어머니의 꿈이 진실로 이뤄진 순간이 그의 발걸음에 찬란함을 더하는 선물이 되길. 마지막까지 어머니의 얼굴에 기쁨이 드리웠던 최고의 순간이 다시금 떠오르길 바라면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를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신의 은총' 모차르트, 고통 속에 작곡의 혼을 불사르다
오페라 '마술피리'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부터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음악 신동의 대명사로 알려졌듯, 모차르트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무려 5세 때 소곡을 작곡한 뒤, 6세 때 미뉴에트와 트리오 등의 작품을 출판했죠. 8세가 되던 해에는 최초의 교향곡을 작곡하고, 불과 12세에 자신의 첫 오페라를 초연했습니다. 17세 때 이미 출판된 작품만 200곡에 달했다고 하죠.워낙 재능이 뛰어난 탓에 '신이 사랑하는, 신의 은총'이라는 의미가 담긴 '아마데우스(Amadeus)'라는 이름이 어떤 예술가보다 잘 어울리는 작곡가임엔 틀림이 없었습니다.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으로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모차르트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가 30세가 지날 무렵 모차르트의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고 하죠. 가난의 직접적 원인이 후원이 끊긴 탓인지, 개인의 낭비 때문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자신을 후원하던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사라졌고 빚이 있었으며, 지인들에게 돈을 꿔달라는 편지를 남겼다는 점입니다.
이제껏 겪지 못한 어두운 생활 속에 놓였던 모차르트는 죽음을 앞둔 4~5년간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댄 것으로 알려집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에 고전 교향곡의 절정을 나타내는 3대 교향곡 '제39번 E장조', '제40번 G단조', '제41번 C장조(주피터)'가 탄생하죠. 그의 4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시 판 투테', '마술피리'와 세기의 걸작 '레퀴엠' 모두 모차르트의 고난에서 피어난 작품입니다.
특히 35세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모차르트가 그해 마지막으로 작곡한 오페라 '마술피리'는 특유의 감성과 재치, 고난도 기교와 섬세한 표현력이 녹아있는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대작으로 꼽힙니다. 이탈리아어가 아닌 서민들을 위해 독일어로 만들어진 모차르트의 4대 오페라 중 유일한 징슈필(Singspiel ;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 있는 독일어 노래극) 작품이기도 하죠. 애정도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초연 당시 '마술피리'는 극장에서 100회 넘게 공연되면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 가장 흥행에 성공했는데, 건강 악화로 병상에 누운 그는 매 저녁 "지금은 주인공 두 사람이 시련을 통과하는 시간"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죠.
마술피리는 자라스트로와 밤의 여왕을 선인과 악인으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타미노 왕자가 밤의 여왕 부탁을 받고 자라스트로에게 잡혀간 파미나 공주를 구하러 가지만, 자라스트로가 현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가 내린 시험을 통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당시 모차르트가 몸담고 있던 근세 유럽의 남성 엘리트 비밀결사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이상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술피리' 속 단연 명장면으로 꼽히는 밤의 여왕 아리아에서만큼은 선인과 악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딸을 납치당한 한 어머니로서 울분을 토하는 밤의 여왕 심경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자식을 빼앗겼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착한 여인도 복수와 분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게 기자의 관점입니다. 이를 이해할 준비가 됐다면 밤의 여왕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속에 불타오르고' 작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더는 내 딸이 아니다"…모녀간 휘말아 치는 피 끓는 긴장감
"자라스트로 때문에 칼날을 갈았다. 그를 죽여야 해. 아무 말 하지 마." 밤의 여왕이 등장해 분노에 가득 찬 음성으로 소리치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현악기의 트레몰로가 시작됩니다. 오케스트라가 'Allegro Assai(매우 빠르게)' 특유의 강렬한 분위기를 드러내면서 밤의 여왕 아리아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셈이죠.그러면 밤의 여왕은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속에 불타오르고"라는 가사를 거친 음색으로 쏟아냅니다. 소프라노 음역이지만 첫소리부터 여리지 않고 강인한 여성의 목소리를 뿜어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성악가가 입을 여는 순간부터 밤의 여왕을 완벽하게 소화할 역량을 가졌는지 평가되죠. 단순히 고음이 많다는 것 외에도 이 아리아를 완벽히 소화하는 소프라노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죽음 그리고 절망" 밤의 여왕은 자신의 딸을 쳐다보며 죽음과 절망 사이 큰 쉼표를 통해 고통에 절규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울부짖습니다. 이내 "죽음과 절망의 화염이 나를 태운다"고 소리치면서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심정을 표현합니다. 이때 오케스트라는 베이스라인을 반음씩 상행시키면서 여왕의 분노가 격화되는 것을 형상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밤의 여왕이 수천명의 관객을 홀로 압도해야 하는 부분인 만큼, 오케스트라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교를 동원하는 셈입니다.
이내 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밤의 여왕은 "네가 자라스트로에게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하지 않으면"이라고 흥분을 약간 가라앉힌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칼을 손에 쥐여줍니다. 잠깐의 분위기 변화를 위해 오케스트라는 쉼표와 스타카토를 사용해 극 전체의 분위기를 매우 빠르게 냉각시키죠. 그러나 밤의 여왕은 순식간에 돌변해 "너는 결코 나의 딸이 아니다"라는 가사를 세 번 반복하면서 자라스트로를 죽일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반주부는 포르테에서 피아노로 빠르게 변하는 포르테피아노 셈여림표를 사용해 여왕의 의지를 더욱 분명히 전달되도록 강조하죠. 소리의 강약이 급하게 움직이는 만큼 청중으로 하여금 불안한 감정이 들도록 자극을 주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이제 모두가 잘 아는 밤의 여왕 아리아의 대표적인 멜로디가 등장합니다. 별다른 가사 없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기교를 맘껏 발휘해 청중을 압도하는 순간이죠. 복잡한 장식음은 물론 다양한 음형과 표현이 어려운 선율을 소화하면서도 소프라노 중 가장 높은 성역의 소리를 내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인정받기 위해선 이 구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단순히 높은 음을 잘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진정한 밤의 여왕은 음의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면서도 16분음표의 고음 스타카토에서 절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죠. 성악가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인 하이 F에서도 화려하면서 위엄있는 음색을,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눈빛은 딸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이후 "넌 더는 나의 딸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딸에게 등을 돌리지만 다시금 뒤돌아 "너는 영원히 버림받고, 너와 나의 인연은 파괴되고 말리라"라고 모진 말을 내뱉습니다. 딸을 향해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마지막 애원과 경고가 뒤섞인 순간이죠.
그래도 딸의 심경에 변화가 없자, 밤의 여왕은 가사 없이 셋잇단음표만으로 구성된 네 마디 동안 흐느끼는 듯한 노래를 이어갑니다. 어머니의 마음에 이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이듯 말이죠. 그리곤 대표 멜로디와 동일한 음형이 한 번 더 나타나는데, 이전과 달리 음이 하강하면서 강인한 여성보단 서글픈 어머니의 심경을 얘기하듯 다른 분위기를 드리웁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은 밤의 여왕은 "들어라"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면서 복수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합니다. 특히 마지막 "들어라. 복수의 여신이여. 어미의 맹세를"이라고 외치는 부분에선 B♭ 고음에서 무려 10박자를 끌면서 결코 자라스트로에 대한 분노를 멈출 수 없다는 집념을 마음껏 드러내죠. 밤의 여왕이 자신의 말을 마치고 이내 딸을 두고 돌아서면 오케스트라가 빠르게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강렬한 세 개의 화음으로 작품을 내립니다.
극한의 감정 표현은 물론 성악곡에 쓰일 수 있는 최고 음 '하이 F'가 여러 차례 등장하면서 소프라노 사이에서 최고의 난곡(難曲)으로 꼽히는 밤의 여왕 아리아. 눈물 한 방울 떨어트리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어머니라도, 모두에게 나긋한 어머니라도 자신의 자식을 빼앗기고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극단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분노를 비롯한 슬픔, 절망 등 극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버튼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소프라노로 키우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어린 딸을 먼 타지로 보냈던 김말순 여사. 오늘만큼은 딸을 직접 볼 수 없어 몸 저리게 서글프고 마음이 미어지는 슬픔은 잊고, 만인의 연인이 된 조수미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복감만 느끼시길. 마음 졸이며 어린 딸의 연주를 전해 듣던 순간은 잊고, 가장 아름다운 예술가로 꽃피운 소프라노 조수미에 대한 자랑스러움만 가득 담은 채 평안한 여행을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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