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야심작 K8이 국내 준대형 세단의 '절대강자' 그랜저를 제쳤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큰 상황이다. 기아 노조가 파업권을 확보하며 생산중단으로 흥행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16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각사 집계에 따르면 K8은 지난달 국내 시장에서 6008대가 팔려 준대형 세단 1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그랜저는 판매량 5247대를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상반기 누적 판매량은 그랜저가 5만2830대로 K8의 2만1766대를 압도하지만, K8이 4월부터 판매된 점을 감안하면 준수한 성적이다.
전작인 K7 판매량과 비교하면 K8의 판매량은 더욱 고무적이다. K7의 지난해 전체 판매량은 4만1048대에 그쳤지만, K8은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 동안 2만7774대가 팔렸다. 판매가 이뤄진 4개월 기준으로 보면 전작 대비 판매량이 2배 가량 늘어난 것.
그러나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할 공장에는 한기가 돈다. 노조가 파업권을 확보하며 언제든 파업에 나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노조원 10명 중 7~8명이 찬성할 정도로 파업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크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 10일 기아 노조가 단행한 2021년 임금·단체협상(임단협) 쟁의행위 찬반투표에는 전체 조합원 2만8527명 가운데 2만1090명이 파업에 찬성했다. 찬성률은 73.9%에 달한다. 노조는 오는 20일까지 파업을 유예하고 사측과 교섭에 나설 방침이다. 사측이 교섭에 성실히 응하고 적절한 제시안을 내놓으면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기아의 제시안이 노조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임단협에서 노사가 '극적 타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지만, 불안감을 지우긴 쉽지 않다. 기아 노조가 2012년부터 매년 파업을 반복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에도 임단협을 두고 4주에 걸친 부분파업을 단행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사측의 제시안에 실망한 노조가 파업을 선택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이미 반도체 공급난으로 생산차질을 빚은데다, 미래차 전환을 위한 투자도 해야 하는 기업 상황을 감안하면 노조가 만족할 제시안을 내놓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랜저의 완전변경(풀체인지)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랜저는 내년 상반기 세대변경을 할 예정이다. 생산차질과 파업 여파로 K8의 출고대기 기간이 더 길어진다면 소비자에게는 '조금 더 기다리고 갓 출시된 새 차를 받는다'는 선택지가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K8이 단독 질주로 가장 많은 실적을 낼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현행 그랜저는 2016년 11월 2세대 플랫폼으로 출시된 6세대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K8은 3세대 신규 플랫폼을 사용했기에 현행 그랜저에 비하면 경쟁 우위에 선다. 다만 내년으로 예정된 7세대 그랜저(UN7)가 출시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신형 그랜저는 K8과 마찬가지로 3세대 플랫폼을 탑재하고 커넥티드 기능에 특화된 새 운영체제(OS)도 갖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그랜저의 전장이 5m 이상으로 늘어나 준대형에서 대형으로 지위가 격상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K8에게는 힘겨운 상대일 수 밖에 없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노사가 협력해 몰려든 주문을 최대한 빨리 소화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당장은 상대적으로 신차인 K8이 그랜저보다 높은 인기를 얻지만, 새 그랜저가 출시되면 상황이 역전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당초 GN7이던 7세대 그랜저의 코드네임도 대형을 뜻하는 UN7로 변경됐다. K8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