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국민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확장재정 자체를 문제 삼을 건 아니다. 하지만 당정이 검토하는 내년도 예산안은 두 차례 선거를 앞두고 더 퍼붓기 위해 세입 규모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계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세입예산 중 가장 비중이 큰 게 국세(약 60%)인데, 정부는 내년 국세 수입을 최근 5년 새 최대폭인 12.8%나 늘린 320조원으로 잡았다. 올해 수출 호조와 집값 급등으로 내년도 법인세와 부동산세 수입이 크게 늘 것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여당은 이를 근거로 지출을 9.3% 증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소비심리가 꺾였고, 반도체 등 수출 상황도 낙관하기 어려워 국내외에서 경고음이 잇따라 울리는 상황이다. 부동산과 증시 역시 지난해만 못해 내년 세수를 장담할 수 없는데도 덜컥 세출부터 역대급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이런 식의 방만한 재정운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4년간 국세 수입은 268조원에서 284조원으로 6.0% 증가에 그친 반면, 세출(본예산 기준)은 30%(429조원→558조원)나 급증했다. 잦은 추경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늘어난다. 기금 수입 등 다른 세입도 있지만, 이 간극이 커지는 만큼 나랏빚이 증가할 수밖에 없어 내년에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훌쩍 넘길 판이다. 이런 과속에 대해 국제기구와 신용평가사의 경고가 잇따르고, 무분별한 확정재정을 견제할 법적 독립기구(재정준칙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가정살림도 들어올 돈을 보고 지출 계획을 잡는 게 기본이다. 이를 못 지키면 가정은 파탄이요, 기업은 부도다. 나라살림도 하등 다를 게 없다. 지금 추세라면 그래프에서 보듯,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인 지출 증가와 세수 감소로 국가채무가 폭증한 ‘악어의 입’을 고스란히 답습할 수밖에 없다. 재정당국은 나라곳간 지킴이로서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국가 미래를 위한 지출항목과 선거용 선심성 항목을 꼼꼼히 가려내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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