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이티의 '3중 재난'

입력 2021-08-16 17:20   수정 2021-08-23 09:58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는 척박하다. ‘산이 많은 땅’이라는 뜻의 나라 이름처럼 국토의 4분의 3이 산이다. 인구의 60%가 좁은 경작지에서 사탕수수·커피 농사를 짓고 산다. 전라남북도와 충청북도를 합친 면적(2만7750㎢)에 1150여만 명이 몰려 사니 인구밀도도 높다.

지질학적으로는 18세기 이후에만 네 차례 큰 지진이 일어난 지진대(帶)에 걸쳐 있다. 북아메리카판(板) 지각과 카리브판의 경계가 부딪치는 ‘엔리키요-플랜튼 가든 단층’이 활성화된 곳이다. 이 나라에서 2010년 대지진으로 22만~30만 명이 사망한 데 이어 지난 주말 더 큰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 사망자가 벌써 1300명을 넘었다.

11년 전 지진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기도 전에 다시 덮친 참사현장은 아비규환이다. 의료진과 장비, 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규모 4~5의 강한 여진이 이어졌다. 건물 잔해에 깔린 부상자와 실종자는 수천 명에 이른다. 산사태로 끊긴 도로와 갱단이 장악한 산악지역 때문에 구조대의 접근도 쉽지 않다.

이 와중에 열대성 폭풍(허리케인)이 몰려오고 있다. 전국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졌다. 지진으로 약해진 지반과 건물에 강풍과 폭우가 덮치면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여기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그야말로 3중 재난이다.

이 모든 비극을 아우르는 더 큰 재앙은 정치 혼란이다. 지난달 대통령이 암살된 뒤 정정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한때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 1804년 독립한 이 나라는 흑인이 세운 최초의 독립국이다. 그러나 권력 다툼으로 1843~1915년 재임한 대통령 22명 중 21명이 암살되거나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농업이 몰락했고 경제가 피폐해져 아메리카 대륙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빈곤율이 60%에 이르니 지진이나 폭풍 앞에 속수무책이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나마 미국 구조팀과 인근 국가들의 의료·식품 지원팀이 현지로 출발했다.

2010년 119구조대를 파견한 우리나라도 국제 지원에 동참하기로 했다. 당시 240명 규모의 공병부대를 보내 2년간 재건 작업을 도왔다. 기독교 단체들도 1000만달러(약 120억원)의 성금으로 ‘아이티의 눈물’을 닦아줬다. 이 나라 국민들이 6·25 때 우리에게 2000달러의 구호금을 보냈던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애잔해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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