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도 못 가게 한다고?…누가 쿠팡에 돌을 던지나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1-08-19 09:30   수정 2021-08-30 17:11


쿠팡의 ‘물류 노동’은 상당히 예외적이다. 미국의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와 징둥닷컴, 영국의 오카도 등 글로벌 e커머스의 선두주자들이 비(非)노동의 길을 지향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징둥닷컴이 2019년 상하이에 구현한 초대형 물류창고는 입고에서부터 출고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과정을 자동화 로봇이 처리한다. 아마존은 2012년 물류 자동화 로봇 기업인 키바시스템즈를 약 9000억원에 인수해 키바라는 로봇을 활용한 물류 규격화와 자동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약 5만명에 달하는 인력을 활용해 로켓배송을 구현하고 있는 쿠팡은 AI(인공지능)을 활용한 동선 최적화 등을 구현하고 있긴 해도, 인력에 기반한 물류 노동을 고수하고 있다. 미·중·EU의 주요 플레이어들과는 물류 및 배송 접근법이 다르다는 얘기다.

물론, 글로벌 e커머스의 선두주자들도 아직까지 물류 자동화를 100% 구현하고 있지는 못하다. 아마존만 해도 미국 기업 가운데 7번째(2017년 말 기준)로 고용을 많이 창출하는 기업이다. 이미 제2 본사를 설립하면서 아마존은 올해에만 7만5000명을 신규 고용한다고 밝혔다. 전체 인력의 8%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아마존은 로봇 자동화에도 엄청난 투자를 진행 중이다. 아마존은 키바 외에도 로봇 트럭과 전기차 개발 및 자율주행 스타트업에 끊임없이 돈을 쏟아붓고 있다. 아마존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물류와 배송의 완전한 자동화다.
인력 고용에 기반한 쿠팡의 테크놀로지
쿠팡은 아마존과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한국을 포함해 밀집형 도심에 적합한 디지털 물류를 구현함으로써 아마존과의 차별점을 부각시켰다. 한때 ‘100조 쿠팡’을 실현할 정도로 김범석의 비즈니스 모델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각광을 받은 건 바로 이 점 덕분이다.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등에선 아마존이나 알리바바보다는 쿠팡의 모델이 더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밀집형 도심 물류의 핵심은 복잡함 속에서 어떻게 빠른 배송 속도를 낼 수 있느냐다. 빠른 배송을 구현하기 위해 쿠팡은 노동에 기초한 디지털 물류를 구현하고 있다. 수많은 물류 거점을 하나의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하되, 물건을 배송하고 포장하고 회수하는 구체적인 실행은 사람의 손을 거치도록 한 것이다. 동남아시아 등 신흥 개발도상국의 경우 풍부한 저임금 노동을 감안하면 쿠팡이 정치적으로도 아마존보다 유리하다.

축구장 몇 배 크기의 물류센터에 수백명의 근로자들이 상자를 나르고, 분류하고, 포장하는 쿠팡의 물류 노동과 전국 어디서든 클릭 하나로 익일 배송과 당일 배송을 실현하고 있는 쿠친들의 배송 노동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논쟁을 불러왔다. 민주노총 등 일부 진영은 쿠팡을 최악의 ‘노동 갑질’ 기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로켓 배송은 쿠팡 근로자의 노동을 연료로 삼아 질주하는 것이라는 비난까지 나올 정도다. 최근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용노동부의 ‘업체별 산업재해 현황 자료’를 근거로 최근 4년간 쿠팡의 산재승인 건수와 재해율이 가파르게 증가했다고 자료를 냈다. 이에 따르면 2017년 141건이었던 쿠팡의 산재 승인이 올 상반기에만 1112건으로 폭증했다는 것이다. CJ대한통운의 산재승인 건수가 2017년 33건, 올 상반기 33건으로 동일하다는 것도 쿠팡에 대한 비판 근거로 삼았다.


한쪽에선 상반된 의견도 나온다. 산재 승인만 해도 쿠팡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재 신청을 적극 수용한 결과라는 논리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782건의 산재 신청 중 758건을 수용했다. 국민연금 가입자수를 기준으로 한 쿠팡 근로자가 지난해 2만1119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재신청비율은 3.7%다. CJ대한통운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자 5382명 중 26명이 신청했다. 산재신청비율은 0.2%다. CJ대한통운 역시 26건 신청 중 24건을 승인했다.

쿠팡에 산재 신청자가 많고, CJ대한통운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고용 형태의 차이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쿠팡(주)에 소속된 배송 인력 중 쿠친이라 불리는 인원은 1만5000명에 달한다. 전체 인력(작년 기준 2만1119명) 중 상당수가 직고용된 이들이다. 이들은 주5일, 주52시간 근무를 철저하게 적용받으며, 산재 포함 4대 보험에 100% 가입돼 있다. 쿠팡에 따르면 쿠팡친구들은 연차 휴가 15일 이상, 근무 중 휴게 시간 보장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쿠팡 배송맨들은 타 기업의 물류센터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분류 업무를 할 필요가 없다. 쿠팡은 약 4400명의 분류 전담 인력을 센터에서 별도로 운영 중이다. 분류 전담 인력은 민주노총이 CJ대한통운 등 대형 물류사에 집요하게 압박한 이슈다. 쿠팡과 달리 기존의 택배사들은 배송 기사들과 기묘한 동거 관계다. 택배 본사가 대리점을 통해 일감을 따오면, 독립 사업자인 택배 기사들이 물건을 날라 수수료를 나눠먹는 구조다. 직고용이 아닌 특수고용 관계다. 회사와 독립적인 외주 사업자 형태로 고용 계약을 맺는 택배 기사는 산재 처리를 위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입직 신고가 필요하다. 산재 신청 건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쿠팡 노동에 대한 뜨거운 논쟁
쿠팡의 물류 노동이 최악이냐도 논쟁 거리다. 민주노총 등 일각에선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일용직 근로자 1명이 ‘과로사’로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업 중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도 반인권적인 노동 환경으로 거론된다.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비난까지 등장했다. 휴대폰 논란은 컨베이어 벨트가 쉼없이 돌아가는 작업 특성상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게 쿠팡의 반박이다. CCTV가 사방에 설치된 거대 물류센터에서 화장실을 못가게 한다는 얘기는 워낙 비상식적인 비난이어서 쿠팡에선 별다른 해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쿠팡의 물류 노동의 강도가 어떤 지를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에서도 아마존의 물류 노동이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키는 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들의 얘기도 제각각이다. 일감이 많이 몰리는 특정 지역의 물류 시설에선 남자 대학생들도 한 달 이상 일하기 쉽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반대로 다른 중소 물류센터의 열악한 시설과 비교하면 천국이라는 평가도 있다. 쿠팡 물류시설에서 일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알바’ 등 자발적 비상시직이라는 건 다른 노동에 비해 노동 강도가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당을 빨리, 더 후하게 지급해주는 쿠팡 물류 시설은 대학생들에겐 꿀같은 알바 거리다.

쿠팡의 물류 노동에 관해 한 가지 분명한 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중이라는 점이다. 쿠팡은 쏟아지는 일감으로 인한 강도 높은 노동 문제를 인해전술과 테크놀로지로 조금씩 해결해가고 있다. 쿠팡의 작년 말 물류센터 근무자수는 1만2484명으로 전년 대비 78% 급증했다. 고용 형태도 상시직과 비상시직으로 나뉘긴 하지만, 100% 쿠팡의 직고용이다. 자동 포장 및 분류 시스템을 설치하고, 컨베이어 벨트를 늘리며, 인공지능을 활용해 작업 동선을 최적화 하는 등 기술 개선을 통한 노동 강도 경감을 위해 지금껏 쏟아부은 비용만 5000억원에 달한다.

대형 물류업체들조차 물류센터 인력 증가율이 10%를 밑돌고, 기술 투자비는 100억원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쿠팡의 노력이 어느 정도인 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업무상 사고사망 건수를 기준으로 쿠팡이 창립 이래(2011년~지난해 말) 단 한건의 사망자를 내지 않았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택배물류업계(운수창고통신업 기준)의 업무상 사고사망자수는 2011년 108명에서 작년에도 50명에 달했다. 2011년 이후 작년까지 10년간 사망자는 807명에 달한다.

쿠팡이 작년부터 최근까지 직원 안전과 건강 관리에 투자한 돈만 2300억원에 달한다. 올 4월엔 쿠팡케어라는 새로운 제도도 도입했다. 직원들이 유급 휴식을 취하며 건강관리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혹서기에 물류센터가 찜통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쿠팡은 전국의 물류센터에 수천대의 냉방기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덕평 물류센터 화재 때 단 한 명의 근로자 사망이 없던 건 화재에 강한 비싼 단열재를 사용한 덕분이다. 코로나19로 예방도 철저하다. 지난해 부천 쿠팡물류센터발 연쇄 확진자 발생 이후 쿠팡은 단 1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즉시 해당 센터를 폐쇄하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쿠팡 노동을 최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에 물류 및 배송 노동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혁신 기업들은 로봇이 물건을 분류하고, 드론과 자율주행차가 주문 상품을 집앞까지 배송할 날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한때 뉴욕시의 밤을 밝혔던 가스등 점등원이 전기의 도입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강하게 저항했다.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러다이스트(기계파괴자들)를 진압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투입한 군대는 나폴레옹과의 워털루 전투에 투입된 군인 숫자보다 많았다.

만일 쿠팡이 인력 고용없는 노동의 시대를 열고 있다면, 기존 물류 및 배송 근로자들의 강한 저항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크다. 테크놀로지가 직업을 없애는 전형적인 사례로 지목됐을 터다. 하지만 쿠팡은 물류 및 배송 노동을 하나의 안정된 직업으로 만드는 길을 가고 있다. 기존 물류 및 배송 직업의 안정성과 업무 강도의 완화를 이끌고 있다는 얘기다. 소득 상승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재 물류, 배송 노동 시장은 전형적인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쿠팡은 물류센터 근로자들을 상시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자사주까지 나눠줬다. 상시직 전환율은 80%에 달한다. 10명 중 8명이 신청만 하면 상시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얘기다. 쿠팡 배송맨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오죽했으면 쿠팡이 월 400만원 소득을 보장한다며 경쟁사인 네이버 메인에 광고를 냈겠는가.

쿠팡이 구현하고 있는 물류 및 배송과 관련한 테크놀로지는 관련 노동의 질과 소득을 높이는 증대 기술 혹은 활성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쿠팡 노동을 최악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쿠팡은 대체 기술로 전향할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인력을 유지함으로써 비난을 받고, 경영진이 형사 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한다면 차라리 자동화로 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쿠팡 노동을 최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최악을 대체할 다음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쿠팡 노동은 최선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차선쯤은 된다. 이런 것을 진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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