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건수가 문재인 정부 초기에 비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감사원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비율도 크게 높아졌다.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벌어졌던 정부여당의 이른바 ‘감사원 때리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앞서 감사원은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등의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결과를 내놨고, 이 때문에 정부여당의 집중 공세를 받았다. 정권에 대해 견제·감시 기능을 해야할 감사원의 권위가 흔들리는 건 국가 행정차원에서 우려할 사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감사원은 코로나19 등이 영향을 미쳐 전반적인 감사 건수가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국가기관에 대한 결산감사나 기관 정기감사, 성과 감사 등은 정권초와 현재,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때 별차이가 없었다. 결산 감사를 받은 기관은 2017년 49개에서 2020년 54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성과 감사를 받은 기관도 63개에서 86개로 증가했다.
반면 특정한 사건이나 의혹에 대해 실시하는 ‘특정 사안 감사’가 줄어들면서 전체 감사 건수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감사는 특정한 정책이나 행정에 대해 의혹이 있는 경우 실시되기에 다른 종류의 감사와 달리 상대적으로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특정 사안 감사를 받은 기관은 2017년 447개에서 2020년 107개로 3년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올해는 51개에 그쳤다. 탈원전 감사 흔들기 이후 정부여당에게 민감한 영역은 건드리지 못하거나 소극적으로 감사하게 된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재작년과 지난해 있었던 거대여당의 ‘감사원 힘빼기’가 결과적으로 통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감사원은 2019~2020년 정부가 조기 폐쇄한 경북 경주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해 조기폐쇄의 적절성과 관련한 감사를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여권의 강한 공세를 받았다. 감사원은 “조기 폐쇄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 수치를 축소 조작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놨고, 이후 여당의 공세는 더욱 강화됐다.
전직 감사원 관료는 “현직 감사원 후배들을 만나면 ‘탈원전 감사 이후로 내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여권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나서 감사원 분위기가 많이 침체돼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감사 결과에 따른 징계 요구 횟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징계요구 횟수는 2017년 426회에서 2019년 284회, 2020년 133회로 급감했다. 2021년은 7월까지 81회였다.
감사원의 징계요구를 기관이 얼마나 받아들이는지를 나타내는 징계이행률도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감사원의 133건의 징계요구에 대해, 정부 및 지자체는 80건(60.2%)만 이행한 것으로 확인났다. 나머지는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심의를 요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의 경우에도 81건의 징계요구 중 이행 건수는 7건에 불과했다.
지난달 감사원은 옵티머스 사건과 관련해 감독 책임이 있는 실무자 5명을 징계하라고 금융감독원에 요구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아래 사람만 처벌하는 ‘꼬리자르기‘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징계가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오히려 감사원의 징계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심의 요청했다.
마사회는 지난 3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를 조작했다는 이유 등으로로 감사를 받았지만 징계를 불이행중이다. 감사원은 10명을 징계요구 했고, 이중 1명이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지난 1월 매출성과를 부풀려 직원 성과금을 줬다는 등의 사유로 징계 요구를 받았지만 불이행중이다. 이밖에 교육부, 국방부, 방위사업청, 합동참모본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충청북도 등도 감사원의 징계에 불복하거나 이행하지 않고 있다.
작년이나 올해의 경우 징계 이행중이거나 소송중인 사항이 있어 이행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다는게 감사원의 입장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징계 이행률은 이전과 비교해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징계이행률은 2013년~2016년 단한번도 95% 미만으로 떨어진적이 없었지만 문 정부의 경우 2017년 90.1%, 2018년 93.3%, 2019년 85.2%였다.
조 의원은 “현 정부 들어 유독 정권의 독주가 강해지면서 이를 감시·견제하는 감사원의 권위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며 “또 작년 정권의 의지와 다른 원전 감사결과를 낸 감사원에 대한 보복과 공세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감사원은 "통계상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감사 대상 기관수가 감사가 얼마나 활발한지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힘들고, 과거 '특정 감사'가 '특정 사안 감사'로 명칭 및 유형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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