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직후 ‘간도지방의 못된 조선인(不逞鮮人)’ 박멸 작전에 나섰다. 독립군의 씨를 말리겠다며 1920년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간도지역 한인 3600여 명을 학살했다. 한인촌의 가옥 3500여 채, 학교 60여 개소, 교회 20여 곳과 양곡 6만여 석까지 불태웠다. 작정하고 달려드는 1만8000여 명의 일본군 정예부대에 독립군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애꿎게 도륙당하는 조선 백성을 지켜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간도에서 살 수 없게 된 상당수 조선인은 더 척박했지만 일본군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동토(凍土), 러시아령 연해주로 이주해 목숨을 부지했다. ‘까레이스키(고려인)’가 된 동포들은 소련 스탈린 정권의 강제 이주 조치로 인해 하루 새 이역만리 중앙아시아로 터전을 또 옮겨야 했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가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치고 그 땅에 묻혀 있던 이유다.
역사는 끊임없이 교훈의 메시지를 던진다. ‘경신참변’은 나라 없는 백성의 삶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서럽고 생생하게 증언한다. 지켜줄 나라가 없이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떠도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온전하게 하려면 개별적 삶의 여정을 비추거나 들춰내는 일에 앞서 해야 할 게 있다. 나라가 왜 제구실을 못 했고 어떻게 해서 자멸했는지를 돌아보며 ‘나라 없는 백성’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새기는 일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며 ‘친일잔재 청산’에 열을 올려온 정부여당이 “일제 치하에서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해 흥남 농업계장까지 지낸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은 친일파가 아니었느냐”는 역공(逆攻)에 진땀을 흘린 것은 그런 점에서 씁쓸한 코미디다. 10대의 나이에 장가를 가고 20대에 군수까지 하던 70여 년 전의 시기에 “그 당시 문 대통령 부친의 나이는 24세(한국 나이로는 26세)에 불과했다”고 한 변명은 하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야멸찬 잣대를 들이대기에 앞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를 철저하게 짚고 돌아보는 게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내년 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최근 제기된 것은 그래서 더욱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목표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내걸었던 데 대해 야당의 일부 대권주자들이 “그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반론을 펴면서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여당이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재반격에 나섰지만 요즘 벌어지는 일들은 그런 말에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4차 확산으로 비상이 걸린 최근 상황이 단적인 예다.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접종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꼴찌 수준으로 떨어뜨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끝을 알 수 없는 ‘강력한 거리두기’가 골자다. 국민 일상을 속속들이 옥죄는 조치는 소상공인들에게 삶의 불편을 넘어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지 오래됐다. 그런 정부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도 되는 건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 6명이 기약 없이 북한 감옥에 갇혀 있고, 바다에서 표류하던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해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부가 국민 삶을 책임지겠다는 다짐은 공허하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 삶을 책임지는 국가’냐 ‘자율과 선택을 존중받는 국민’이냐 하는 논란은 사치스럽다. ‘국민 삶을 지켜주는 국가’부터 이루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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