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변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실망했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2030 세대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보수진영에 제대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지만, 이 대표에 이끌려 야당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유권자들입니다. 불과 두 달 전 야당 대표의 ‘세대교체’에 환호하던 이들의 설렘과 기대감이 이렇게 식어가는 이유는 뭘까요.
정치는 세력을 늘리는 일입니다. 자기편을 늘려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상대 진영과의 싸움 뿐 아니라 같은 편에서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작용합니다. 우선 당내에서 지지 기반을 늘려야 활동 반경이 넓어집니다. 당 대표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이 대표가 제1야당의 수장이 된 지 두 달이 흘렀습니다. 헌정사에 유례없는 30대 당대표를 맞이한 거의 모든 언론들과 달콤한 허니문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내부의 적들은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대선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야권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과 사사건건 부딪쳤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스톤대전’이라는 비아냥이 나돌 정도입니다. 당 대표 취임 전 순조롭게 진행되던 국민의당과 합당 절차는 중단됐습니다. 그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거리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당의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를 둘러봐도 이 대표를 두둔하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당 안팎 인사들과 두루두루 친한 김기현 원내대표도 사석에선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윤 전 총장 캠프를 두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벌인 설전은 이 대표에게 가장 뼈아픈 대목입니다. 원 전 지사는 당의 대선 후보직을 놓고 윤 전 총장과 경쟁을 하는 관계입니다. 특히나 지지율이 낮은 그의 입장에선 “토론회에 참여하라”며 이 대표 편을 들어주는 게 상식적인 통념입니다. 그런 원 전 지사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아도취 상태에서 아무 얘기도 귀담아듣는 게 없고 말꼬리 잡고 반박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이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물론 원 전 지사가 본인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당 대표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반론도 있습니다만, 평소 원 전 지사를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들의 평가는 사뭇 다릅니다. “나랑도 이렇게 얘기할 정도면 윤석열, 안철수랑 진행된 것도 이래서였구나라는 감이 확 왔다”는 원 전 지사의 말에 무게가 실립니다.
이 대표는 어젯 밤 늦게 페이스북에 원 지사와의 통화 내용 원문을 공개하며 “이제 국민의 판단에 맡기고 당 개혁 작업을 위해 내일부터는 또 새로운 구상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통화 내역을 공개한다고 논란은 가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여론전으로 비칠 공산이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판은 ‘정글’에 비유합니다. 본인이 살기 위해선 어제의 동지까지 물어뜯는 험악한 장소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당을 개혁하려면 우선 당내에 자기편을 늘리는 ‘덧셈 정치’를 해야 합니다. 자기편이 늘어나면 당 대표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일은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습니다. 당 대표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많은 것을 얻어을 수 있습니다. 통화 내역을 공개하며 여론에 호소하기 보다는 직접 만나서 소통하고 오해를 푸는 건 어떨까요. 인수분해하듯 정치를 하면 대선에서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