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몸속 항체가 줄어든다.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19 델타 변이 감염을 막기 위해선 더 많은 항체가 필요하다. 부스터샷(추가 접종)은 몸속 항체 수치를 최소 10배 이상 높여준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18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로셸 월렌스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내달 20일 화이자와 모더나 등 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두 번 맞은 성인 접종자에게 부스터샷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첫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이다. 이스라엘에 이어 미국까지 부스터샷 대상을 대폭 확대하면서 저개발 국가들이 극심한 백신 기근에 내몰리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에서 올 5월 3일 백신 접종자들의 코로나19 예방률을 분석했더니 92%로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델타 변이가 확산하던 7월 25일 이 수치는 80%로 낮아졌다. 장기간 접종자를 관찰한 메이요클리닉 연구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백신 효과가 떨어졌다. 올 1월 모더나 접종자의 코로나19 예방률은 86%였지만 7월엔 76%로 하락했다. 화이자 접종자는 같은 기간 76%에서 42%로 줄었다.
일부 전문가는 백신 예방 효과가 두 달마다 6%씩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미 CDC는 델타 변이 유행 전 92%에 이르던 백신의 예방 효과가 델타 변이 유행으로 64%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백신의 전파 차단력이 떨어져 이른바 ‘물백신’이 되면 부스터샷을 맞는 것조차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중증 예방률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뉴욕 백신 접종자의 5월과 7월 중증 예방률은 95%로 같았다. 화이자 접종자의 1월과 5월 중증 예방률은 각각 85%와 75%였다. 백신 접종을 마친 지 6~7개월 지나 몸속 항체 수치가 떨어진 사람에게 부스터샷을 투여했더니 항체값이 최소 10배에서 44배까지 높아졌다.
미국이 부스터샷 접종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다른 나라도 부스터샷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는 80세 이상 고령층 등을 대상으로, 독일은 고령 요양시설 거주자를 대상으로 각각 다음달 부스터샷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도 50세 이상 면역 취약 계층에 부스터샷을 도입할 방침이다. 백신 접종을 비교적 늦게 시작한 한국 정부도 올 4분기 고령층을 중심으로 부스터샷을 시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올 2월 의료종사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일본도 10월께 부스터샷을 시작할 예정이다.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부스터샷을 시작하는 데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브루스 에일워드 WHO 상임자문위원은 “세계적으로 45억 회분 넘는 백신이 투여됐지만 저소득 국가에서 1차 이상 백신을 접종한 비율은 1.1%에 불과하다”고 했다.
미국에선 백신 접종 후에도 마스크 착용 등의 방역 조치를 유지하는 곳이 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한 학교에선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스크 의무 착용을 금지한 플로리다와 애리조나주에선 공화당 소속 주지사와 학교 사이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이지현/이선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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