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놈은 본 적이 없소….” 미국 작가 피터 벤츨리의 소설 《죠스》에 등장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어부 퀸트는 기존의 상어와는 전혀 다른 패턴으로 행동하는 거대 백상아리를 맞닥뜨리자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를 느낀다. 난데없이 ‘게임의 규칙’이 변하는 것만큼 난감한 상황도 없을 터. 하지만 이 같은 곤혹스러운 경험은 경영자들에겐 낯선 일이 아니다. 기업 환경은 단 한 번도 예상대로 움직인 적이 없고, 경쟁자들은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상어처럼 빈틈을 보이면 가차 없이 약점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컴피티션 시프트》는 급속한 디지털화와 코로나19 확산 등 요동치는 기업 환경 속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는, 막강한 경쟁력을 지닌 디지털 기업의 성공 비결을 파헤친 책이다. 아마존과 페이스북, 구글, 알리바바 등 수십 개의 디지털 기업이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들이 과연 계속해서 시장을 지배할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직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전통기업엔 서둘러 행동에 나설 것도 촉구한다.
디지털 거인들의 성공 비결을 보여주는 안내자는 ‘생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포천)로 불리는 램 차란이다. 그는 명료한 문체로 거대 디지털 기업이 지닌 경쟁우위의 근원을 설명하고, 다른 기업들이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대 경영사는 물론 근대 자본주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디지털 대기업들이 거둔 성과는 남다르다. 월마트가 50년 넘는 시간을 들인 끝에 시가총액 3370억달러에 도달했지만, 아마존은 창업 25년 만에 시총이 월마트의 3배인 9400억달러를 찍었다. 빠른 성장뿐 아니라 디지털 대기업들은 현대인의 삶과 경험을 완전히 바꿨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어떻게 오늘날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제프 베이조스 같은 남다른 리더가 있었고, 기존 조직과는 다른 독특한 기업문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성공 원인과 방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공 공식을 되풀이한다고 성공이 재현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는 탓이다.
저자는 기업경영의 ‘게임의 법칙’을 바꾼 디지털 거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경쟁우위에 주목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상상력’이다. 점진적인 개선에 만족했던 전통기업과 달리 아마존과 구글,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통념의 100배가 넘는 규모의 시장을 상상했다. 아마존, 알리바바, 텐센트, 라쿠텐 등은 사실상 세계 72억 명의 인구를 상대로 영업한다.
그러면서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했다. 스마트폰을 ‘창조’한 애플은 19억 대의 단말기를 팔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을 키운 넷플릭스는 1억6700만 명의 가입자를 자랑한다.
기업 활동은 철저하게 ‘꿈’과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췄다. 꿈을 현실로 이룬 비장의 무기는 디지털 플랫폼이었다. 저마다 사용 목적은 달랐지만,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빠르게 신상품을 실험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내놨다. 재빠른 가격 조정과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벌일 기반을 다졌다.
기업 내부의 의사 결정은 혁신과 속도를 향상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전통기업들이 복잡한 시스템과 관료주의에 발목이 잡혔을 때 디지털 플랫폼에 올라온 실시간 정보에 의거해 곧바로 의사 결정이 내려졌다.
경영 판단은 추호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다. 마이클 포터, C.K.프라할라드, 게리 해멀 같은 대가의 이론이나 맥킨지와 보스턴컨설팅그룹 같은 유명 컨설팅사의 처방이라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들이 권하는 ‘핵심역량 강화’가 미래보다 과거를 돌아보는 데 특화돼 바뀐 ‘게임의 법칙’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까닭에서다.
대신 모든 비즈니스 행위를 최종 사용자인 소비자 개인에게 초집중했다.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번거롭지 않게 은행 업무와 검색, 소셜미디어, 쇼핑, 오락, 여행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익구조는 현금 창출과 기하급수적인 성장에 최적화했다. 동시에 승자독식이 아니라 협업과 경쟁이 병존하는 생태계를 갖춰 성장을 가속했다.
저자는 “기업의 기존 장점은 너무나 빨리 잠식되고, 기존의 사고방식은 새로운 변화 앞에 쓸모가 없을 뿐”이라며 “끊임없이 사업구조를 재설계하고 기업의 경쟁우위를 재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상어가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상어의 행동 패턴을 파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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