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우리 사회에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이메일’도 자연스럽게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말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다툼’ 하나가 전개됐다. 그것은 언중(言衆)의 선택을 받기 위해 벌어진, 말과 말 사이의 세력 싸움이었다. 주인공은 ‘이메일’과 ‘전자우편’이다.
외래어 ‘이메일’에 대응해 20년 넘게 경쟁
지금 우리가 ‘이메일’이라고 쓰는 이 용어는 처음부터 그리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electronic mail’의 약어인 이 말은 초기에 주로 ‘e메일(또는 ‘E메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e메일은 물론 영어 ‘e-mail’을 머리글자 e만 놔두고 나머지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외래어 ‘e메일’이 우리말 안에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해 가자 곧바로 다듬은말이 나와 경쟁을 벌였다. 순화어로는 ‘전자우편’이 제시됐다. 1997년 전산기용어(국어순화용어자료집)를 비롯해 2002년 국어순화자료집에 이어 2012년 국어심의회 국어순화분과 회의에서 될 수 있으면 ‘전자우편’을 쓰도록 심의 확정했다.
외래어 표기 지침을 정하는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는 이보다 앞서 2000년 12월 회의에서 ‘이메일’을 인정했다. 당시 결정사항을 보면 이 용어 표기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전자 우편, E-mail, EM(electronic mail). ※‘이 메일’로도 쓰되 특수한 경우 ‘e메일’로 쓸 수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이외에 누리편지, 전자메일, 전자편지 등 예닐곱 가지의 표기가 띄어 쓰는 경우와 뒤섞여 어지럽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던 게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이메일’과 ‘전자우편’ 두 개로 압축돼 가는 모양새다. 그중에서도 전자우편보다는 이메일이 더 우세한 듯하다. 언어의 자유시장에서 언중의 선택을 받은 결과일 것이다. ‘이메일’은 이미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 표준어로 올라 있다.
언중의 선택은 ‘이메일’…다듬은말 밀어내
‘e메일→이메일’, 또는 ‘전자우편→이메일’로의 표기 변천에서 우리말에 스며든 외래어의 생장 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 외래어를 적는 데는 기준이 있다. 우선 적절한 번역어가 있으면 당연히 그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영문 약어 등 고유명사류는 잘 번역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한글로 독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언론에서 관행적으로 외래어를 적는 방식이다. 그중에서도 일부 용어는 본래의 표기 문자를 버리고 완전히 한글화한다. 그 기준은 대개 우리말 안에서 얼마나 뿌리를 깊게 내렸느냐에 있다.가령 예전에 UN 또는 번역어인 국제연합으로 쓰던 것을 요즘은 한글로 ‘유엔’이라고 많이 쓴다. NATO 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는 흔히 ‘나토’로 부르고 적는다.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레이다(RADAR·전파탐지기), 유니세프(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 등 많은 말이 그렇게 바뀌었다. 이들은 관용적으로 한글 표기가 자리 잡은 말들인데, 모두 국어사전에도 올라있다. 그만큼 우리말화 정도가 깊다는 뜻이다.
e메일이 ‘이메일’로 표기가 굳은 것도 외래어의 수용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만큼 우리말 안에서 온전히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은 다듬은말인 ‘전자우편’의 소멸화 과정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e커머스’도 ‘이메일’과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다음호에서 외래어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e커머스의 현주소’를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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