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아라비안나이트] 탈레반 집권과 아프간의 미래

입력 2021-08-22 17:51   수정 2021-08-23 00:15

지금 아프가니스탄은 생지옥이다. 미군은 떠났고 탈레반은 2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왜 미국은 20년간 2조3000억달러(약 2600조원)라는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고도 패배를 안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야 했을까?

처음부터 미국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탱크 한 대 진입하기 어려운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생존공동체로 연결돼 있는 수많은 부족 군벌을 소탕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아프간 민족은 서로 다퉈도 외세에는 똘똘 뭉쳐 함께 몰아내는 강한 전통이 있다. 그래서 식민시대 영국도, 막강한 구소련도, 미국도 손들고 떠나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제국들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무엇보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민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 대통령인 아슈라프 가니는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간 미국 시민권자다. 물론 새로운 조국 건설의 꿈을 펼치려 했겠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미국의 철저한 이익 대변자에 다름없다. 아프간 정부가 아니라 미국의 보호막에 안주하는 카불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배경이다.

탈레반은 나쁜 정권이고 폭압적인 조직임에 틀림없지만, 그들은 한때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세력(1996~2001년)이었다. 전쟁통에도 주민의 민생과 치안을 책임지는 지역 정부였다. 통치를 포기한 중앙정부 대신에 물과 빵, 일상의 안전을 보장해 줌으로써 탈레반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79년 구소련은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전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다. 그들이 남하해 걸프해를 봉쇄하고 원유라는 미국의 생명선을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과 협력해 알카에다와 무자헤딘 세력을 지원하고 훈련시키면서 막강한 소련 군대의 아프가니스탄 장악과 남하를 온몸으로 저지했다. 미국과 알카에다, 탈레반의 전신인 무자헤딘은 오랫동안 공동 보조를 맞춰온 협력적 동반자였다. 국제 정치의 추악한 이면이다. 소련을 물리친 이후에는 다양한 군벌과 부족 집단 간에 권력 분점을 놓고 내전에 휩싸였다. 7년간 내전(1989~1996년)을 통해 정권을 쟁취한 세력이 바로 탈레반 무장조직이었다.

그들은 오랜 전쟁으로 부패에 찌든 타락한 사회를 정화한답시고 이슬람 율법을 극단적으로 재해석했다. 여성들에게 부르카를 강제하고, 교육과 취업 기회를 차단했다. 법치를 무시하고 손목 절단형과 참수형을 일삼았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폭파하면서 문명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다. 2007년에는 한국인 선교사 23명을 납치해 그중 두 명을 살해하는 잔혹함까지 보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악몽들이다.

문제는 탈레반의 잔혹성이 과연 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강경 이슬람 정권이라는 태생적 정체성 때문에 크게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과거 같은 악명 높은 폭압정치를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공존한다. 탈레반의 주역들이 20~30대로 전쟁 이후 태어난 디지털 세대이고, 글로벌 변화를 실시간으로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공포정치로 정권을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고갈된 재정에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전후 복구 지원과 경제적 원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매우 분명하고 가시적인 여성 인권 개선 및 민주화 이행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탈레반 지도부가 연일 성명을 통해 여성 보호와 취업·교육 기회 보장, 사면과 공정한 법 집행을 약속하는 것도 이런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결국 미국도 전후 복구 지원과 아프간 인권 상황을 연계하면서 탈레반 주도의 신정부와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중동 주변 국가와 러시아, 중국 등도 신정부 구성과 함께 수교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우리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같이하면서 탈레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도적 긴급지원을 통해 끌어안고 전후 복구 참여의 핵심적 주도 국가로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외교를 펼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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