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편의점 CU의 ‘제페토한강점’이 문을 열었다. 국내 편의점업계에서 첫 시도로, 유통업계에서도 드문 일이다. ‘오프라인 유통 최후의 보루’로 불리던 편의점에서 어떻게 가장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인 메타버스에 진출했을까. 제페토한강점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오명란 BGF리테일 마케팅실장(사진)을 지난 18일 만났다.
오 실장은 ‘공대 출신’으로 보스턴컨설팅그룹 등 컨설팅회사에서 유통 컨설턴트로 일했다. 2015년 BGF리테일에 합류했으며 현재 40~50명 규모의 마케팅실을 이끌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잡는 데 주력하던 BGF리테일은 일찍이 메타버스를 눈여겨봤다. 임원들 중에서도 제페토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소비력이 있는 2030세대는 독특한 상품과 오프라인 마케팅으로 끌어올 수 있었지만, 10대와 20대 초반에게는 직접적으로 다가갈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MZ 중에서도 Z세대가 주도하는 메타버스가 늘 관심의 대상이었죠.”
“네이버와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온 건 올 초다. 네이버페이 등 BGF리테일과 네이버가 해오던 온·오프라인(O2O) 협업이 계기가 됐다. 로블록스 등 글로벌 게임 메타버스들도 있었지만 CU가 러브콜을 보낸 곳은 네이버제트의 제페토다. 게임보다 유저들 간 소통에 집중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한몫했다. 편의점도 삶에 필요한 제품들을 파는 공간이고, 사람들이 제품을 사 먹으며 대화도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전문가와 가상세계 전문가들이 의견을 모으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BGF리테일 측은 오프라인 점포와 정확히 똑같은 편의점을 구현하길 원했다. 크고 좁은 매대에 제품이꽉 찬 모습이었다. 제페토 직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메타버스에선 오히려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점포가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듯, 제페토에선 스마트폰으로 화면을 보는 유저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오 실장은 말했다.
‘제페토화(化)된 편의점’으로 콘셉트를 정하자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2층에 루프탑을 만들고. 점포 앞에 악기를 배치해 공연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실제 점포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만들었다. CU 간판은 허공에 띄웠다. 제품은 ‘편의점에서 반드시 파는 것’과 ‘CU만의 것’으로 좁혔다. 삼각김밥과 디저트, CU의 대명사가 된 곰표 제품(팝콘), 자체 브랜드(PB) ‘하이루’ 등이 구현됐다.
오 실장은 “BGF리테일에서만 10여개 팀이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해 오랜 기간 제페토와 협의를 거쳤다”며 “마케팅, 디자인부터 점포시설 팀까지 다양한 분야의 젊은 직원들이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제페토한강점은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라는 것이 오 실장의 생각이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CU가 제페토에 입점한 11일 이후 점포가 있는 ‘한강공원 맵’ 방문자 수가 이전보다 3.4배 늘었다. 아바타에게 입히는 CU 유니폼은 7만개 가량 팔렸다. 브랜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는 셈이다. 동남아에 진출한 CU가 해외 유저들이 많은 제페토에서 글로벌 인지도를 높일 가능성도 크다. e커머스와의 연계 등 본격적인 수익화 방안은 자리를 잡고 나서도 늦지 않다.
BGF리테일은 연내 제페토에 2호점과 3호점을 열 계획이다. 각각 교실과 지하철역 안에 문을 연다. 택배 등 편의점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도 구현할 계획이다. "오프라인 점포를 만드는 만큼의 노력을 메타버스 편의점을 구현하는 데 쏟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팀원들과 무궁무진한 시도를 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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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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