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전전하다 이제라도 집 사려고 했더니…" 속타는 매수자

입력 2021-08-23 13:15   수정 2021-08-23 15:03

"아침에 문도 열기 전부터 전화가 오더라구요", "오전에만 두 팀 오기로 했습니다", "급매가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집주인(매도자)이 다시 생각해본다고 하죠"…(일선 공인중개사들)

가을 이사철을 앞둔 부동산 시장이 또한번 혼란에 빠졌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며 압박한 끝에 은행권이 대출 중단 및 축소를 잇달아 발표하면서다. 전세대출까지 축소가 예정되면서 뒤늦게라도 집을 사기위해 매물을 알아보던 무주택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높아져 버린 전셋값과 집값에 대출길까지 막힌다는 걱정이 무주택자들을 짓누르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동에서 집을 알아보던 직장인 김모(44세)씨는 지난 21일 부동산 사무소를 들리기로 약속을 했던 터였다. 중개사가 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해 궂은 날씨였지만 사무실을 찾았다. 현장에 들린 김 씨는 깜짝 놀랐다. 이미 사무실은 붐비고 있던데다 집을 보지도 않고 매수인들이 계약서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대출규제 소식을 접한 김 씨는 "주중에는 일이 바빠서 기사를 통 보지 못했다가 주말에 집을 보러 다니며서 알게 됐다"며 "그나마 나와있던 매물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 있어서 촉박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매수인들은 속이 타고 있다. 중개인들은 '발품'(직접방문) 보다는 '손품'(전화연락이나 SNS)으로 훨씬 연락이 많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20일 서울 일부지역에서는 부동산 중개수수료 인하와 관련 동맹 휴업까지 있었다. 때문에 주말에 문의가 급증하고 사무실에 손님들이 들어닥치는 수준으로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용인시 기흥역세권 주변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대출을 막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은행문이 닫은 늦은 오후부터) 매도자, 매수자 할 것 없이 문자, 카톡문의가 밤늦게까지 왔다"며 "매수자에게 일단 계약을 빨리하는 게 낫겠다고 안내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약금을 걸고 계약 날짜를 잡아놓은 매수자들의 경우에는 늦게 계약을 했다가 대출을 못받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매도자의 경우 대출이 막혀 매수자가 줄고 집값이 떨어질지, 반대로 지금과 같은 집값 상승세가 계속될지는 문의하는 전화가 대부분이라는 게 이씨는 설명했다.

NH농협은행은 오는 24일부터 11월말까지 신규 가계 담보대출을 중단하기로 했고, 농협중앙회는 전국 농·축협의 집단대출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기존 대출 만기연장을 제외하고 대출을 늘리거나 재약정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농협중앙회는 또 60%인 대출자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자체적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SC제일은행은 지난 18일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퍼스트홈론' 신잔액기준 코픽스에 한해 운영을 중단했다. 우리은행은 9월말까지 전세자금 대출을 일시 중단한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19일 오후부터 알려지면서 은행 영업일인 20일에는 창구 및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일선 부동산에는 대출이 추가로 막힐 것을 우려한 매수자들이 주말에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더군다나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혹은 매매를 알아보고 있던 기존 매수자들까지 조급함에 서두르면서 대형 단지의 부동산마다 문의가 쏟아졌다.

한편 금융위는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이날 해명자료를 통해 "NH농협은행·농협중앙회의 주택담보대출 등 취급 중단과 같은 조처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어"대형 시중은행을 포함한 대다수 금융회사는 가계대출 자체 취급 목표치까지 여유가 많이 남아 있다"며 "NH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는 올해 가계대출 취급 목표치를 매우 크게 초과해 특별한 조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세계약 갱신을 한 김모씨는 내년 봄에 출산을 앞두고 있어 집을 알아보고 있다. 그는 "같은 돈을 가지고 면적을 줄여가야하는 형편이 돼 속상하던 참이었는데, 그 돈 마저 대출을 막아버리면 이제는 거리에 나 앉으라는 거냐"며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공급 청약은 다 떨어졌고, 전세계약은 갱신해놨지만 새로 나오는 전셋값은 보면 너무 무섭게 오르고 있다"며 "얼마전 까지만해도 남편이랑 '정말 이러다가 길바닥에서 애 낳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는데 이젠 진지하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담보 대출 뿐만이 아니다. '영끌'로 불리는 신용대출도 조이기 시작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대출규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청원인은 "주변에서 생활비 충당이나, 학자금 융통,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을 한다"며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를 태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다"며 규제철회를 당부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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