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량인데다 중독성이 강해 '악마의 잼'으로 불리는 누텔라가 이탈리아 지역 생물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누텔라를 만드는 이탈리아의 페레로가 원료인 헤이즐넛 자급화를 추진하면서 로마 북부 농장들의 재배 품종이 헤이즐넛으로 단일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페레로는 누텔라에 들어가는 자국산 헤이즐넛 원료 비율을 2025년까지 30%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이탈리아너트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시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이탈리아 전역의 헤이즐넛 생산 농지를 9만 헥타르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에서 생산되는 헤이즐넛 110만t 중 터키산 비율이 69%에 이른다. 이탈리아 8.8%, 아제르바이젠 4.8%, 미국 3.5% 순이다. 페레로도 그동안 터키산 헤이즐넛을 이용해 누텔라를 생산했다.
하지만 원료 공급망을 단축하고 생산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소비자 수요가 늘면서 변화를 맞았다. 경쟁사인 바릴라가 100% 이탈리아산 헤이즐넛 잼을 출시한 것도 자극제가 됐다. 누텔라가 터키산 헤이즐넛을 이탈리아산으로 바꾸게 된 배경이다.
소비자 수요에 맞춘 결정이지만 이번엔 환경단체들이 반발했다. 올리브 포도 등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던 경작지를 헤이즐넛이 뒤덮으면서 황폐화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로마 북부 비냐넬로 지역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부는 "풀이 무성하던 목초지, 작은 농장 등이 모두 헤이즐넛 농장으로 바뀌었다"며 "계속 토양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사막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환경단체들은 풀이 잘 자라지 않던 지역까지 헤이즐넛 농장으로 개간되면서 지하수가 고갈되고 토착 식물종이 사라졌다고 우려했다. 단일 식물종으로 바뀌면 질병과 해충이 늘어 살충제와 제초제 사용이 증가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페레로는 이탈리아에서 이미 1960년대부터 헤이즐넛을 생산해왔다고 반박했다. 페레로는 농업과 과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농부들도 페레로 입장을 지지했다. 이탈리아 농업단체인 콜디레티의 로렌조 바자나는 "밀 옥수수 포도 등 단일품종 재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며 "농경지를 선택해 생산하는 것은 기업의 선택"이라고 했다.
세계 견과류 시장에서 이런 환경과 노동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FT는 내다봤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상징인 아몬드를 생산하기 위해 현지 농가들은 막대한 물을 쓰고 있다. 기후변화로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환경단체들은 아몬드 생산 농가들이 물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지역에선 캐슈넛 농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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