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PO시장 '대면 로드쇼'가 사라졌다

입력 2021-08-23 17:08   수정 2021-08-24 01:56

브라질의 디지털 상거래회사 브이텍스(VTex)는 지난달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35억달러(약 4조14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회사 경영진과 기업공개(IPO)를 주관한 투자은행들이 50여 차례에 걸쳐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어필한 결과물이었다. 수천 마일에 달하는 항공기 여행과 유수의 체인호텔에 숙박했던 과거 로드쇼(투자설명회)와 달리 이들의 마케팅은 다소 ‘덜 화려한’ 수단에 의존했다. 바로 화상회의다.
물리적 로드쇼의 죽음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세계 대도시를 돌며 수일간 지속되는 대규모 오찬과 회의로 상징되던 주식·채권 투자설명회의 전통 문화가 코로나19 여파 이후 사라져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부분 화상회의를 통해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에 투자 유치를 위해 세계를 돌아다녔던 임직원들은 이제 예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온라인 회의가 빠르고 비용은 훨씬 더 저렴해서다. 이는 돌아다니느라 교통체증에 갇혀 있는 시간을 줄이고, 그 대신 더 많은 잠재적 투자자와 더 많이 접촉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걸 의미한다.

상장 컨설팅기업 클래스V그룹의 리세 바이어는 “브이텍스 상장 사례는 기존 방식의 투자설명회보다 더 많은 미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4년 구글 상장 팀원이었는데, 당시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급하게 투자설명회용 정장을 구입하느라 애를 먹었던 일화를 전했다.

FT에 따르면 전통적인 투자설명회는 보통 뉴욕에서 오전 대형 투자자들과 세 번의 1 대 1 미팅→점심 식사→네 번 이상의 1 대 1 미팅→저녁 식사로 요약된다. 미팅은 투자자의 사무실에서 열리고, 주관사들은 고급 호텔에서 오찬을 마련한다.

상장 일정과 목적에 따라 투자설명회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이를 관리하는 전문적인 이벤트 기업들도 있다. 800개 이상의 IPO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이벤트회사 이매지네이션의 크리스 이스라엘스키는 “상장회사 중역과 미국 전역, 그리고 전 세계를 방문한다고 보면 됐다”면서 “여기에 더해 물류 관리자 등은 호텔과 렌터카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현지에 가 있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2012년 페이스북이 상장 전 직접 제작한 온라인 투자설명회를 선보였는데, 그게 지금 이뤄지고 있는 변화의 시초였다”고 했다.
올해 역대급 발행 규모 예상
투자은행 입장에서 화상회의는 엄청난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해준다. BNP파리바의 피에르 라폼 미 주식·자본시장 책임자는 “대면 설명회는 너무 비쌌다”고 했다. 아무리 간소하게 치르더라도 수십만달러 이상이 들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스키는 “이동용 제트기 대여 비용만 100만달러에 육박한 적도 있다”면서 “온라인 설명회 덕분에 아낀 비용으로 보다 정교한 마케팅에 공들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본조달을 위한 시간도 줄었다.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 자료에 따르면 올해 차입매매의 자금조달에서 대출거래 발표일로부터 투자자에게 해당 부채가 할당되기까지 평균 11.8일이 걸렸다. 이는 평균 21일에 가까웠던 2010년 이후 가장 짧은 기간이다. 이처럼 짧은 회전율을 통해 채권 및 주식 발행시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면 투자설명회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채권 담당자 및 투자자들이 자금 사정이 어려운 기업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할 때는 해당 회사의 임원을 직접 만나봐야 안심할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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