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국서원이 펴내는 이 교과서가 ‘인생 설계의 3대 비용’으로 제시한 금액은 6610만엔(약 7억600만원)이다. 수도권에 땅을 사서 집을 짓는 데 4040만엔, 자녀를 유치원부터 고교까지는 공립학교, 대학은 사립대 문과계열에 보낼 때 교육비 930만엔, 은퇴한 뒤 25년 동안 노후생활비(지출-연금 수입) 1640만엔을 합한 금액이다.
인생의 주요 이벤트 경비만 따진 것이어서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실제 한평생 살아가는 데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7억원이면 대략 인생의 견적이 나온다는 건 분명하다. 그나마 15년 새 엄청 뛴 액수다.
3대 비용 가운데 하나인 노후자금의 경우 2004년 일본 정부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을 하기 전까지 일본인에겐 낯선 얘기였다. 할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월 50만엔 이상의 연금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룻밤에 10만엔 하는 일본 전역의 고급 온천여관들이 이들 덕분에 유지됐다.
2019년 금융청의 보고서 이전까지 일본인들이 ‘윗세대만큼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연금소득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본 노년층은 가구당 평균 2484만엔을 저축하고 있어서 노후자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많다.
서울은 아파트 가격 11억5751만원(국민은행 7월 말 기준)에 고교 졸업까지 교육비만 1억702만원(신한은행 2018년 보통사람 금융생활보고서)이 필요하다. 대학을 포함하면 교육비는 2억원 가까이 들어간다. 여기에 노후자금이 적어도 3억3000만원은 든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서울에선 대략 16억~17억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이 일본보다 1.6~1.7배 더 들지만 형편은 훨씬 쪼들린다. 50대 세대주의 경제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2017년 기준 66세 이상 고령자의 빈곤율은 4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과거 한국이 일본보다 가난했을 때는 “나라는 못 살아도 개인의 삶은 한국이 더 윤택하다”고들 했다. 2018년 한국이 1인당 평균 구매력에서 일본을 따라잡았을 때 “그것 보라”며 통쾌해했던 이유다. 요즘 상황을 보면 과연 한국인의 삶이 더 풍요로운지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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