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디바이스는 지난해 맥심인터그레이티드를 205억달러(약 24조원)에 인수키로 했다. 최종 합병을 위해선 미국과 한국, 중국 등 8개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두 기업 간 합병으로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가 없는지를 각국에서 판단하는 과정이다. 미국과 갈등을 빚어온 중국 정부는 줄곧 심사 과정에서 몽니를 부렸다. 하지만 두 회사의 합병 건을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승인하면서 시장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아날로그디바이스(1.79%)와 맥심인터그레이티드(4.90%) 주가는 물론 자일링스(6.41%) 인수를 앞둔 AMD(3.94%), ARM 인수를 추진 중인 엔비디아(5.49%) 주가가 동반 상승한 이유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아날로그디바이스와 맥심인터그레이티드 합병이 중국 규제당국으로부터 승인받으면서 AMD 주가에 추가적으로 날개를 달아 줄 것으로 전망된다”며 “전반적으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반등에 박차를 가할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인텔이 미국 국방부 선단 공정 파운드리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소식도 반도체 관련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텔(2.35%)뿐 아니라 반도체 장비를 공급하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3.37%), ASML(2.97%) 등의 주가가 뛰었다. 업계에선 “미국에서 반도체를 전략 물자로 인식할 것이라는 점은 물론 미국 국방부가 이를 위해 관련 생태계를 밀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이번 발표가 인텔의 파운드리 실적에 당장 긍정적인 영향을 주진 않지만 미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선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장 초반 힘을 쓰지 못했던 두 종목이 상승하자 바닥을 다지고 반등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이달 들어 단기간에 10%가량 주가가 급락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을 둘러싼 불안감이 완화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을 되찾은 것도 국내 증시에 외국인이 돌아온 원인으로 꼽힌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지난 13일 이후 열흘 남짓 만에 1160원대로 떨어졌다. 장 막판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비롯한 사업군에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한다고 깜짝 발표한 것도 주가를 밀어올린 원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반도체 관련 주가를 떨어뜨린 반도체 피크아웃 우려가 시장에 남아 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D램 공급사들의 매출이 급격하게 확대되며 고객사들의 재고 수준이 높아졌다”며 “결과적으로 재고 조정으로 인해 4분기부터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고객사들의 D램 재고 수준이 높아지면서 특정 제품군에 대한 수요 증가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봤다. 내년 1분기 D램 가격 조정 폭이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PC용 D램은 물론 서버, 모바일용 D램까지 전 부문 제품 가격이 4분기 대비 내년 1분기에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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