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군의 철수 연기 가능성을 언급하자 탈레반이 “예정대로 이달 말까지 철군하라”고 받아쳤다. 미국과 유럽에선 철수 시한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예상이 많아 탈레반과 충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 북부 지역을 거점으로 한 반(反)탈레반 세력을 포위한 것으로 알려져 아프간 내부 무력 충돌이 임박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8월 31일 모든 군대를 철수시킬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는 ‘레드라인’이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군은 반드시 시한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과 영국이 추가 시간을 원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아니오’”라며 “시한을 지키지 않으면 결과가 따르고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압박했다.
미국은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식적으로 이달 말까지 철수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탈레반의 희망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도 그때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애덤 시프 미국 하원 정보위원장은 정보당국의 보고를 받은 뒤 기자들에게 “아프가니스탄 대피 작전이 8월 31일까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애덤 위원장은 “아직 대피가 필요한 미국인 수를 생각할 때 대피작전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이날 화상으로 개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의 철군 시한을 늦추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미군의 철수 시한과 관계없이 탈레반이 미국과 연관된 인력에 보복하고 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CNN방송은 이날 탈레반이 미군에 협력한 아프간인 통역의 가족에게 사형 판결을 전하는 통지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카불 북부에 있는 반탈레반 조직을 와해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탈레반은 이날 반탈레반 세력이 모여 있는 반누와 데살라 지역의 무장세력을 무력화했다고 주장했다. 반탈레반 세력은 카불 북부 판지시르 계곡에 집결해 결사항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국부(國父)’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가 이 계곡에서 반탈레반 세력을 이끌고 있다. 마수드가 이끄는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은 BBC방송을 통해 “병력 수천 명을 확보했으며 탈레반과 싸울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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