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은행 잡는 사이 '카드론' 34조 돌파…'부채 폭탄' 터질까

입력 2021-08-25 10:28   수정 2021-08-25 10:47


신용카드 장기대출인 카드론 규모가 1년 새 14% 이상 증가하면서 34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규제로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카드론에 빠르게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대출 공급 통로를 막아버리면서 저신용자뿐만 아니라 고신용자까지 카드론 이용을 늘린 결과다. 카드론은 대표적인 고금리 대출로 규모가 급증하면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카드론 34조 넘어섰다…은행권 '대출 규제' 풍선효과 영향
25일 <한경닷컴>이 입수한 각사 부문별 자산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7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하나·우리)의 카드론 잔액은 34조13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9조7892억원보다 14.5% 증가했다. 1년 새 4조원 넘게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 말 32조원을 넘기면서 2008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카드론은 올해 1분기 33조1787억원, 2분기 34조1311억원으로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증가 속도도 빠른 편이다. 올해 들어서만 6.5%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금융당국의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인 5~6%를 카드론은 반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규제로 은행들이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게 가파른 카드론 증가세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사태 타격에 급전이 필요한 다중채무자와 저신용자의 대출 수요가 증가했고, 은행의 대출 문턱을 통과하지 못한 고신용자들까지 유입되면서 카드론 규모가 빠르게 불어났다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금리가 낮아져 유동성 공급이 늘어난 상태에서 자금 상황이 안 좋아진 수요층이 증가했고, 은행권의 대출 문이 좁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나쁘지 않은 이들까지 카드론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코로나19 타격과 은행권 대출을 조이면서 발생한 풍선효과가 카드론 규모를 키운 핵심적 요소"라고 진단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은행권 부채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들어오면서 제2금융권에 풍선효과가 일어난 것이 카드론 규모가 급증한 핵심적 요인이라 본다"며 "저신용자뿐만 아니라 고신용자까지 카드론으로 넘어오면서 마이너스 카드론 상품과 금리 인하 등의 마케팅이 성행한 점도 카드론 증가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폭탄' 뇌관 우려…기준금리 인상 시기 '위험성 ↑'
카드론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면서 가계부채 폭탄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금리 대출인 카드론 이용이 늘어날수록 가계부채 질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카드론은 돈을 빌리는 방식이 쉽고 간편하지만, 연평균 금리는 13% 안팎인 대표적인 고금리 대출이다. 3%대인 은행 신용대출 금리의 4배를 웃돈다. 여기에 신용점수가 낮은 고객에겐 법정 최고금리(연 20%)가 적용될 수 있다.

카드론의 경우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이 낮은 다중채무자 비중이 높은 점도 위험요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카드론 이용자 414만명 중 65%에 해당하는 269만명이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 채무자로 집계됐다.

더 큰 문제는 최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 상승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리 상승 시기엔 카드론 등 고금리상품을 보유하면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높아질 경우 대출을 보유한 전체 가계가 내야 할 이자는 12조원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로 소득이 줄어든 상태에서 상환 능력이 낮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이자 부담이 늘면, 가계에 미치는 충격은 배로 커질 수밖에 없다.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는 사태가 연달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표적인 고금리 대출인 카드론은 가계부채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이자 상환 부담을 가중시켜 가계부채 폭탄의 새로운 뇌관으로 자리할 수 있다"며 "연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이 사실화된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대출 상환 부담 증가가 실현되고, 결국 카드론부터 대출 부실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는 "고금리, 다중채무자 비중이 높은 카드론이 위험성이 큰 부채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며 "특히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다가온 상황에서 카드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금융시장 위험성을 높이는 상당히 불안한 요소"라고 했다.

강 명예교수는 "특히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의 카드론 사용은 금리 상승 국면에서 개인 파산, 가계부채 악영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문제가 대두되기 이전에 이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금융당국, '카드론' 예의주시…"하반기 증가분 관리"
카드론 규모가 급격히 불어남에 따라 금융당국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올해 5월 국내 카드사의 올해 가계대출 목표치를 취합하면서 신용대출과 카드론 확대를 억제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이달 들어서는 금융감독원이 여신금융협회를 통해 카드사들에 카드론 속도 조절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7일에는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2023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방안의 추진 일정이 적정한지와 제2금융권의 느슨한 DSR 규제 수준이 풍선효과를 유발할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필요시 보완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면서, 카드론 DSR 규제가 조기 적용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자 금융위원회 측은 카드론의 차주단위 DSR 적용 시기를 앞당기는 것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낸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선 카드론을 겨냥한 DSR 조기 도입안에 대해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현재로서는 카드론만 추가 규제가 도입될 계획은 없으며, 2금융권에 대한 가계부채 대책에서 함께 논의될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가계대출 증가에 대한 총량 관리와 마케팅 축소, 중도 상환 유도 등의 조치로 올해 하반기 카드론 증가분에 대해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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