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가 수소경제와 에너지 대전환의 선두주자가 될 겁니다.”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천연가스 사업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미래 친환경 에너지의 핵심 공급자가 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30년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료 생활을 한 채 사장은 2019년 7월 가스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부임 후 첫 일성으로 ‘환골탈태’를 강조했다. 수소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환에 대비하는 근본적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채 사장은 창사 이후 가장 큰 조직 개혁을 이끌고 있다.
▷수소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부에서 오랜 기간 에너지 정책을 다룬 사람으로서 느낀 직관적 확신입니다. 지구적 친환경 트렌드를 거스를 수 없고, 수소경제 시대는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는 판단이었죠. 에너지 전환은 국가 미래를 좌우하는 최우선 정책 과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미래차 시대를 내다보고 테슬라를 키워냈듯이 가스공사도 에너지 전환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스공사는 수소사업의 최고 적임 기업이기도 합니다. 무색무취의 수소와 천연가스는 물성이 유사하고, 생산·공급·판매의 밸류체인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가스공사가 지난 38년간 쌓은 천연가스 생산, 운송, 공급 역량을 감안할 때 수소사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스공사는 수소와 신사업으로 무장한 투자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해나갈 겁니다.”
▷관련 사업 성과를 소개해주십시오.
“가스공사가 직접 운영하는 첫 충전소인 김해충전소가 지난달 상업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천연가스 도매업 회사에서 국민을 상대로 직접 수소를 판매하는 새로운 사업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대구 수소충전소는 내년 상반기에, 경남 창원과 광주의 거점형 수소생산기지는 내년 말 차례로 구축됩니다. 민간기업인 GS칼텍스와 함께 국내 최초로 수소액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죠. 액체수소는 기체수소보다 저렴하고, 운송 및 보관이 편해서 향후 수소충전소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가스공사는 수소 제조·공급·판매의 전체 밸류체인을 완성해 수소 중심 사업자로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이뤄나갈 계획입니다.”
▷사업 전환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공기업은 기존 관행에 따르는 무사안일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가스공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노조 반대도 심했죠. 미래가 불확실한 영역에 가스공사가 나서는 것이 타당한지 왜 걱정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이대로 머물러 있으면 가스공사의 미래는 더 어둡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붙잡고 설득했고, 젊은 직원들이 많이 호응해줬습니다. 이제 직원들 사이에서 수소사업을 왜 하냐는 질문은 사라졌습니다. 2020년 가스공사가 수소 유통 전담기관으로 선정된 것이 중요한 변곡점이 됐습니다.”
▷취임 후 수소사업 외에 보람을 느낀 성과가 있나요.
“발전회사에 대한 발전용 천연가스 개별요금제 공급계약입니다. 지난해 지역난방공사를 시작으로 내포그린에너지, 한주, GS EPS 등과 잇달아 천연가스 개별요금 공급 계약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는 발전회사들이 천연가스를 해외에서 직접 도입하는 것보다 가스공사에서 천연가스를 구매해 공급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는 의미죠. 그만큼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가격 경쟁력이 우수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가스공사가 해외에서 LNG를 싸게 도입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죠.”
▷최근 카타르 장기 도입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지난달 카타르와 가스공사 역사상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천연가스 장기 도입 계약을 체결한 것도 보람있는 일입니다. 2025년부터 20년간 200만t의 천연가스를 들여오면서, 신규 협상을 통해 기존 합의한 가격 대비 약 1조1000억원을 더 낮췄습니다. 가스공사의 도입 경쟁력을 세계에 입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가 계약의 혜택은 곧바로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그만큼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작년 가스공사 실적이 안 좋았는데요.
“인정합니다. 작년에 당기순손실을 냈습니다. 주주 배당을 하지 못한 점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2010년 전후로 자원 안보를 위해 대규모 해외 유전 및 LNG 개발 사업에 투자했던 영향이 컸습니다. 유가 하락 영향이 즉각 손실에 반영됐습니다. 올해는 다릅니다. 올 상반기 순익은 작년 대비 1007% 증가했습니다. 국제 유가가 오르고, 국내 천연가스 판매량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말에는 깜짝 놀랄 정도의 영업이익과 순이익 실현이 예상됩니다. 올해는 큰 폭의 배당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입니다. 작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을 때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것도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한 경영의지를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으로도 공기업으로서의 공익 추구와 상장기업으로서의 수익성 추구의 조화를 이뤄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탄소중립은 지구적인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우리 시대의 소명입니다. 가스공사는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지구 온도 1.5도 상승 억제 목표와 국가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국가 목표 대비 5년 앞당긴 2045년 탄소중립 실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가스공사의 수소사업이 탄소중립 실현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가스공사가 평택에 터미널을 건설하면서 LNG 시대를 열었듯이 해외 액화수소 도입과 수소의 배관 혼입, 수소발전을 통해 수소시대를 개척하려고 합니다. 가스공사가 국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주축이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가스공사의 미래 모습이 궁금합니다.
“가스공사는 천연가스라는 신에너지를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공급해 낸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가스공사는 천연가스 인프라 중심 회사에서 수소 에너지 핵심 기술 중심 회사로 탈바꿈할 겁니다. 미래에도 가스공사는 여전히 글로벌 에너지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을 겁니다. 또 수소 생산·유통·판매의 밸류체인 완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에너지를 판매할 계획입니다. 기존 기업 간 거래(B2B)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개인 간 거래(B2C) 기업으로 전환하는 큰 변화입니다. 최근 프로농구단을 인수한 것도 B2C 기업 전환을 위한 포석입니다.”
▷정부 에너지 정책에 바라는 점이 있습니까.
“유럽 등 에너지 선진국을 보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해 장기적인 로드맵을 설정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 석탄에서 석유 및 천연가스로의 에너지 전환은 운송, 산업·발전용 수요 전환과 함께 한 세기 이상 걸렸죠. 신재생에너지 및 수소사회로의 전환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과감한 규제 개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에너지 신기술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도 필수죠. 독일은 2015년부터 풍력발전 및 수전해 기술을 통해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민·관·정이 힘을 모아 선진 기술 격차를 줄이는 담대하고 도전적인 기술 투자에 나서야 합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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