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동안 이런 광경을 묵묵히 지켜본 민초들은 ‘국민 노릇’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지금 이 시국에 거대 여당이 언론, 의사, 사학(私學) 등을 손보는 데 그토록 목을 맬 일인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개혁’은 5000만 국민을 위한 것인가, 정권을 위한 것인가. 민주사회의 기본인 헌법가치와 대립하는 이견의 합의 도출 과정을 그렇게 간단히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우려와 불안감이 팽배하다. 코로나 터널은 끝이 안 보이는데 안보·외교, 경제·민생, 부동산·백신, 일자리·교육 어느 것 하나 성한 곳이 없다. 물가 주가 금리 환율까지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한다. 콘크리트 같은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소득 격차를 더 벌리고, 국민 노후를 책임질 연금의 파탄이 다가옴에도 못 본 체하고 폭탄 돌리기에 급급할 뿐이다. 정치적 계산과 포퓰리즘에 빠져 600조원 예산, 나랏빚 1000조원쯤은 새 발의 피로 여긴다. 재정,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곳간이란 곳간은 다 거덜날 지경이다.
이런 판국이니 차기 대통령은 극한직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내가 대통령감’이란 대선주자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들은 향후 5년을 이끌 리더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입증하기보다 매표(買票)성 공약을 남발하며 누가 더 세게 지를지 경쟁한다. 토지공개념이니 기본주택이니 하는 공약이 난무하는 걸 보면, ‘포퓰리즘 정책은 사회주의 정책과 자주 겹친다’는 지적이 틀리지 않다.
대통령이 되려면 국민에게 ‘백마 탄 구세주’로 비쳐야 한다고 여기는 것인가. 보통 사람들의 바람은 경제가 잘 성장해 자식들 취업 잘되고 장사도 잘되는 것인데, 그럴 만한 경제성장과 국가발전 비전은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인다. 그들의 거칠고 무책임한 생각들이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불안하게 한다.
차라리 허경영 씨가 일관되고 솔직하지 않느냐는 세평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가 행주산성에서 갑옷에 백마 타고 대선 출정식을 열며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많아서다” “내가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외치는 걸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없다. ‘허경영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한 정치평론가의 촌평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다.
퇴행하는 한국 정치는 깜빡이가 노골적으로 남미행(行)을 가리킨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그런 징후가 뚜렷하다. “혜택을 주겠다는 약속을 남발함으로써 대중의 환심을 사서 권력을 잡으려고 애쓰는 현상”을 포퓰리즘으로 정의(에드윈 윌리엄슨)한다면 더욱 분명하다. 아르헨티나의 원조 포퓰리스트 후안 페론이 1952년 칠레 대통령 당선자 카를로스 델 캄포에게 보낸 편지를 집단 탐독한 게 아닌가 싶다. “국민, 특히 노동자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십시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준 것 같아도 더 주십시오. 곧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눈길을 끈 인물도 있다. 경선 승리 가능성이 희박한 박용진(더불어민주당)과 윤희숙(국민의힘)이다. 박용진은 ‘허술한 안보, 무능한 진보는 안 된다’며 법인세·소득세 감세론까지 폈다. 그 덕에 문자폭탄에 시달린다. 윤희숙은 퍼주기 공약 일절 없이 노동·연금개혁을 내걸고 ‘포퓰리즘 파이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감스럽게도 윤미향과 이상직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는데, 얼굴이 두껍지 못한 윤희숙은 스스로 사퇴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꼴이다. 그의 사퇴가 정치판에 죽비가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190여 일 남은 선거를 앞두고 대선주자들의 거친 생각을 국민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런 정치를 되풀이할지, 정권이 바뀌면 나아질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경제패권 전쟁 속에 이 나라가 온전할지도 불안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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