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앤서니 스토에 따르면 초연결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고독이 필요하다. 그는 고독이 개인에게 얼마나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렇게 설명한다. ‘혼자 있는 능력은 자아발견과 자아실현, 다시 말해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구와 느낌, 충동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다 (……)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새로운 통찰을 얻고 새로운 발견을 할 때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혼자 있는 순간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대개는 그렇다.’
그러나 분주한 일상에서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공간, 즉 내적 거리를 확보할 필요성이 느껴질 때 미국의 국민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아침 태양’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호퍼는 고독의 화가로 불리는데 그만큼 현대인의 내면 풍경을 탁월하게 그려내며 고독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는 업적을 남겼다.
한 여자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호텔 방 침대에 앉아 창문 밖을 응시하는 이 그림에서는 호퍼 특유의 고독한 분위기가 짙게 배어 나온다. 이 작품을 고독에 관한 걸작으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관객이 그림 속 여자의 고독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여자의 고독이 마치 나의 고독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작품을 감상하면서 고독의 비밀을 풀어보도록 하자.
여자는 짧은 분홍색 슬립을 입었고, 머리카락을 뒤로 동그랗게 말아 올려 빵 모양으로 단정하게 얹은 머리 모양을 했다. 두 무릎을 세우고 양쪽 팔을 교차해 다리를 감싸는 자세를 취했다. 또한 이 그림에는 직선이 많이 사용됐다. 실내 벽과 침대, 창문, 창밖의 건물, 심지어 벽에 비친 햇빛도 모두 날카로운 직선을 사용했으며 오직 여자의 육체만이 곡선 형태다. 직선이 나타내는 심리적 효과는 경직성, 강함, 긴장감, 예리함이고 곡선은 유연성, 정다움, 편안함, 부드러움이다. 여자의 속옷 차림, 자기방어적 자세, 직선의 강조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내면의 자신을 찾고 싶은 욕구를 표현했다.
호퍼의 위대함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한 개체의 실존적 고독을 그렸다는 것. 일반적으로 고독과 외로움은 혼용해 사용되지만 둘은 차이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해리 스택 설리번은 외로움은 ‘인간관계로부터 고립된 부정적 혼자 됨’으로, 고독은 ‘스스로 선택해 자신을 찾는 긍정적 혼자 됨’으로 구분했다.
호퍼가 부정적 외로움을 긍정적 고독으로 전환시키는 데 활용한 도구는 빛과 창문이다. 호퍼는 평생토록 빛의 존재와 의미를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이 작품에서도 눈부신 아침 햇살이 인물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햇빛이 벽에 닿는 부분과 그늘진 곳, 햇빛을 받는 여자의 몸 앞쪽과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대비에 주목해보라.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로 고독의 크기는 잴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밝고 투명한 아침 햇살에서 왜 활력이나 생동감보다는 서늘한 고독이 느껴질까. 아침 태양빛은 일반적으로 따뜻함, 구원, 희망, 지혜, 시작, 건강을 상징하지만 그림 속 빛은 실제 햇빛이자 고요한 내면을 비추는 심리적 빛이다. 따라서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 속 실제 주인공이 여자가 아니라 빛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미술전문가도 있다. 미국의 시인 마크 스트랜드는 호퍼의 빛을 이렇게 해석했다. ‘호퍼의 빛은 축하의 빛이라기보다는 기념의 빛이다. 그의 빛이 기하학적인 견고성을 갖추게 된 것은 그가 빛이 흩어지지 않도록 빛에 어떤 생명을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한편 창문은 외부 세계와 내면의 자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여자의 몸은 실내에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창문 바깥을 향하고 있다. 이는 여자가 바깥세상과 자신의 내부, 두 세계의 경계선 사이의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창문을 통해 인간에게는 자신과 타인 사이를 연결하려는 욕구와 혼자만의 공간에서 내면을 성찰하려는 두 가지 욕구가 공존하며, 혼자됨과 함께 있음이 균형을 찾을 때 고독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진정한 고독의 의미를 전하는 이 그림은 예술가, 문학가, 음악가를 비롯해 앨프레드 히치콕, 데이비드 린치, 마틴 스코세이지 등 영화계의 거장 감독들에게 영감을 줬다. 특히 오스트리아 출신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은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년)에서 ‘아침태양’을 그대로 재현해 화제를 낳았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