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펜타곤이 자살폭탄 테러 공격을 받으면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 이어진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6·25전쟁 기간을 모두 합친 것보다 긴 20년간 지속됐다.
2001년 말 서방 세력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뒤 지난 15일 탈레반이 재집권하기 전까지 20년간 아프간 국민의 생활 수준은 빠르게 개선됐다. 국내총생산(GDP)은 다섯 배 가까이 불어났고 평균 수명도 9년 길어졌다. 보건위생 환경을 판가름하는 척도 중 하나인 신생아 사망률도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빈곤국 신세를 벗어나진 못했다. 전쟁의 그늘도 깊어졌다. 20년 동안 부패지수는 제자리걸음을 계속했고 투자 환경은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세계적 경제 석학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개발도상국을 향한 미국의 군사 개입이 한계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지난해 아프간의 GDP는 198억700만달러(약 23조1840억원)였다. 탈레반이 떠난 직후인 2002년 40억5500만달러보다 다섯 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프간은 2003년 이후 10년간 매년 9%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성장세는 최근 들어 둔화했다. 경제의 상당 부분을 국제 원조에 의존했는데, 이 금액이 줄어든 탓이다. BBC에 따르면 아프간 국민총소득(GNI)에서 국제 원조가 차지한 비율은 2009년 49%에서 2019년 22%로 감소했다. 아프간이 합법적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작년 기준 10억달러에 불과하다. 포도 등 과일 수출이 대다수다. 가장 큰 수출 품목 중 하나로 꼽히는 아편은 공식 통계엔 잡히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음성적인 무역 규모가 아프간 경제의 8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점령한 뒤 국제통화기금(IMF), WB 등은 잇따라 아프간으로 향하던 원조를 끊었다. 아프간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경제분석가 가레스 레더는 “20년간 아프간 경제는 다른 국가의 지원을 기반으로 발전했다”며 “이런 지원이 끊기면 GDP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사회경제적 상황도 후퇴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 환경이 개선되면서 기대수명은 55.8세에서 64.8세로 9년 길어졌다. 2000년 태어난 아이는 평균 55.8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됐지만 2019년 신생아는 이 연령이 64.8세까지 높아졌다는 의미다.
교육 수준도 나아졌다. 2000년 초등교육을 받은 아이 비율이 20%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100%까지 상승했다. 중등교육을 받은 아이는 2001년 12%에서 2018년 55%로 높아졌다. 학교 다니는 아이는 20년 만에 820만 명 늘었다. 기술 보급 속도로 빨라졌다. 2000년대 초반엔 휴대전화 사용자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2019년엔 인구의 60%가량이 사용했다.
여성 인권을 탄압하던 탈레반이 떠난 뒤 여성의 삶이 크게 바뀌었다. 여자도 초·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고 10대 임신율은 급감했다. 일하는 여성도 늘었다. 지난해 아프간 공무원 다섯 명 중 한 명은 여성이었다. 국회에 진출한 여성도 증가했다. 2001년에는 보지 못하던 풍경이다. 영국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의 수잔나 하레스 교육정책 공동국장은 “20년간 여성의 교육 환경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며 “하지만 이제 많은 아프간 소녀가 강제로 학교를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WB의 투자 환경 조사에서도 아프간은 낙제점을 받았다. 190개국 중 173위다. WB는 “민간 부문 개발이 다양하게 이뤄지지 못했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데다 제도·인프라 등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만연한 부패도 투자 환경을 해치는 요인이 됐다.
미국의 정치적 개입에도 열악한 경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대해 삭스 교수는 “미국 정치 문화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그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 논평을 통해 “6·25전쟁 이후 이뤄진 개도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예외 없이 부패를 낳았다”며 “미국 외교 엘리트들은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다른 나라의 욕망을 무시해왔다”고 비판했다. 군사 개입과 정권 축출에만 집중해 현지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패했고, 이는 또 다른 전쟁의 먹잇감이 됐다는 것이다.
린든 존슨 전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이끈 1960~197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0년대 중앙아메리카 군사 개입 등이 모두 같은 결과를 냈다고 삭스 교수는 평가했다. 미국이 2001~2021년 아프간에 투자한 9460억달러 중 86%인 8160억달러가 미군을 위한 군사비로 사용됐다. 아프간 경제 지원을 위해 사용된 비용은 2% 미만인 210억달러에 불과했다.
“아시아개발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인도적 투자를 확대했다면 빈곤국 유혈사태를 끝내고 다가올 전쟁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미 지도자들은 이런 일에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전쟁에 수조달러를 지출한 미국이 보여준 게 모래 위의 피밖에 없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삭스 교수의 분석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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