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파월, 뭐라고 했길래…기술주 날고, 지수 또 사상 최고

입력 2021-08-28 06:47   수정 2021-08-28 06:59



27일(현지시간) 잭슨홀 미팅의 날 아침이 밝자 미 중앙은행(Fed)의 '매파'들이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하지만 '슈퍼비둘기' 제롬 파월 의장은 꿋꿋했습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자산 매입이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해를 줄 수 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연은 총재(테이퍼링은 시장 혼란 주지 않는다.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연은 총재(늦기 전에 일찌감치 테이퍼링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은 총재(조건이 갖춰졌다. 9월에 테이퍼링을 발표하고 올해 시작하는 걸 지지한다)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연은 총재(곧바로 자산매입을 줄이는 걸 지지한다)등 여섯 명의 Fed 멤버가 파월 의장 연설 직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줄줄이 ‘매파적’ 발언에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뉴욕 증시의 지수 선물은 꾸준히 0.1~0.3% 수준의 상승 폭을 유지했고 오전 9시 30분 비슷한 수준에서 개장됐습니다. 발언한 이들이 모두 '매파'였고 예상됐던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곧 '슈퍼비둘기' 파월 의장이 등판을 준기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파월 의장의 ‘잭슨홀 미팅’ 화상 연설이 시작됐습니다. 동시에 연설문 전문이 Fed 홈페이지에 공개됐습니다. 주요 지수는 그야말로 수직으로 치솟았습니다. 특히 나스닥 기술주들이 힘을 받았습니다.



파월 의장은 무슨 발언을 했을까요? 그의 연설을 다섯 가지 포인트로 정리했습니다.

① 경제 진전하면 '올해' 테이퍼링 적절

처음 귀에 들어온 언급은 "나는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대부분 참가자와 마찬가지로 경제가 예상대로 광범위하게 진전한다면 올해 자산 매입 속도를 줄이는 게 적절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7월 FOMC 회의록에 “대부분 올해 테이퍼링이 적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란 문구가 있었는데, 자신도 그 진영에 있었음을 밝힌 겁니다. 그동안 테이퍼링 시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올해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겁니다.

② 테이퍼 조건 충족, 물가 O 고용 X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파월은 "(자산매입축소의 조건인) '상당한(Substantial) 추가 진전'은 인플레이션에서는 충족됐다"라면서도 "최대 고용 목표에서는 명확한(Clear) 진전이 있다"라고만 밝혔습니다.

‘명확한’(Clear)라는 말은 ‘상당한’(Substantial)과 명확히 다른 말입니다. 그러면서 더 개선된 고용지표가 필요함을 지적했습니다. "실업률은 팬데믹 이후 최저인 5.4%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너무 높다. 장기 실업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노동참여율은 다른 고용지표에 비해 훨씬 뒤처져 있다"라고 말한 겁니다.



월가 관계자는 "9월 FOMC에서의 테이퍼링 발표는 물 건너 갔다. 다음 달 3일에 나오는 8월 신규고용 수치가 100만 명이 훌쩍 넘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다면 혹시 모를까"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월가의 8월 신규고용 추정치는 75만 명 수준입니다. 지난 6, 7월 93만~94만 명에 달했는데, 이달 델타 변이 확산세로 인해 줄어든 것이지요.

리처드 클라리다 Fed 부의장도 이날 CNBC 인터뷰에서 "지난 3개월간 신규취업자가 월평균 80만 명 수준인데, '가을'에도 이런 숫자를 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도 올해 말 테이퍼링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수치가 가을(통상 9~11월)에 이어져야 하는 겁니다.

③ 델타 변이는 단기 위험

파월 의장은 델타 변이에 대해 "단기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최대 고용을 향한 지속적인 발전에 대한 전망은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정책 전망을 바꿀 정도의 위험은 아니라는 겁니다. 델타 변이에 대한 언급은 이날 연설에서 딱 세 번 나오는 데 그쳤습니다.


실제 이날 발표된 7월 개인소비지출(PCE) 증가율은 전월 대비 0.3%로 발표돼 6월(1.1%)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하지만 이미 서비스 관련 지출은 팬데믹 이전인 2020년 2월보다 1.3% 많습니다. 또 상품 지출은 20.1%나 많고요. 그리고 소비지출의 근원인 7월 개인소득은 전월 대비 1.1% 증가해 6월(0.1% 증가)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즉 델타 변이의 영향은 있지만,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은 아닌 겁니다.



④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파월 의장의 연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긴 강의'로 이어졌습니다. 연설의 3분의 2가량을 여기에 할애했습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파월 의장은 "경제의 빠른 재개는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상승을 가져왔다. 기업과 소비자들은 가격과 임금에 대한 상승 압력을 널리 보고하고 있다. 이런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우려의 원인"이라면서도 "이런 우려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여러 요인에 의해 누그러진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섯 개의 표까지 들고나와 '인플레가 일시적'이란 논리를 설파했습니다.

이날 발표된 7월 PCE 물가는 전년 대비 헤드라인은 4.2%, 음식물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은 3.6%나 올라 1991년 5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Fed의 장기 목표인 2%의 두 배에 달합니다. 다만 전월 대비로는 각각 0.4%, 0.3% 증가해 전월보다 증가세가 꺾였습니다. 대부분 월가가 예상한 수준입니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최근 물가 급등에 크게 기여한 중고차 등 특정 품목의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향후 몇 달 동안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지금까지 인플레이션이 '팬데믹과 경제 재개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비교적 좁은 범위의 상품과 서비스 그룹'을 넘어 상승하고 있다는 증거가 거의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 사례로 임금 인상이 지속할 것이란 증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또 지난 30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억제해 온 세계화, 기술 발전 등이 글로벌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이 여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파월 의장이 ‘슈퍼비둘기’라는 걸 확인시켜준 대목이 있었습니다. 연설 막바지에 파월 의장은 과거 사례를 들어 "중앙은행이 일시적인 요인에 대응해 긴축 정책을 펼치면 그 필요성이 지나고 나서 주요 정책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시기적절하지 않은 정책 움직임은 고용 등 경제 활동을 불필요하게 느리게 만들고 인플레이션을 예상보다 낮춘다. 오늘날 고용시장에 상당한 여유가 남아 있고 전염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그런 실수는 특히 해로울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긴축 정책을 서두르지 말아야 하는지를 한참이나 설명한 것입니다.



⑤ 테이퍼링, 금리 인상은 별개

하나 더 있습니다. 그는 테이퍼링에 대해 "금리 인상이 임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도 길게 설명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 시기와 속도는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한 직접적 신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금리 인상)에 대해 우리는 (테이퍼링과) 다르고 실질적으로 더 엄격한 테스트를 설정했다"라고 말한 겁니다.



어제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에서 "월가는 테이퍼링이 곧 실시되는 건 걱정하지 않는데, 금리 인상이 언제 될 지 주목하고 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금리가 인상되려면 물가, 고용에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고 천명한 겁니다.

바이탈놀리지의 애덤 크라사펄리 설립자는 "파월 의장은 시장에 금리 인상의 문턱이 테이퍼링보다 훨씬 높다고 밝힘으로써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를 뒤로 미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S&P500 지수는 파월 의장의 연설 도중에 4500을 다시 넘어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나스닥은 상승 폭이 더 커졌습니다. 금리가 낮게 유지되면(Fed가 올리지 않으면) 가장 수혜를 받는 게 기술주입니다. 결국 S&P500지수는 0.88% 상승한 4,509.37로 마감됐고 나스닥은 1.23%나 급등했습니다. 다우도 0.69% 올랐습니다.

금리는 연설 도중 10년물 수익률 기준으로 1.36%에서 1.31%로 급락했습니다. 특히 국채 금리는 Fed가 설정하는 기준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단기물(2~5년물)이 장기물(10~30년)보다 더 많이 내렸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을 분리하려는 파월 의장의 노력 덕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달러 가치도 약세를 보였습니다. ICE 달러인덱스는 이날 오전 10시께 급락해 0.4%가량 떨어진 92.6 수준에서 마감했습니다.긴축을 늦추겠다는 게 파월 의장 연설의 핵심이었으니까요.

골드만삭스는 "파월 의장의 연설은 그가 최근 몇 달 동안의 강력한 고용 증가와 델타 변이로 인한 하방 위험을 모두 인정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 일치했다"라면서 "우리는 모든 일이 잘 돌아간다는 가정하에 계속해서 FOMC가 9월에 사전 경고를 하고 11월에 테이퍼링 일정을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밝혔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테이퍼링을 발표할 가능성을 11월 45%, 12월 35%, 내년 20%로 유지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파월 의장의 발언은 11월 초 회의에서 테이퍼링을 발표하고 11월 중순에 시작할 것이라는 우리 예상과 궤를 같이한다. 8월 신규고용 수치가 중요하다. 우리는 60만 명 증가를 예상한다. 델타 변이 등으로 인해 최근 추세가 둔화하는 것이다. 이는 Fed가 테이퍼링에 착수하기 전에 추가 지표를 확인하기를 원할 정도로 충분히 부드러워진 수치"라고 밝혔습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폴 애시워스 수석경제학자는 "8월 신규고용에서 또 다른 큰 폭의 증가를 보더라도 델타 변이 위협으로 인해 대다수 Fed 위원은 11월 회의까지 기다려 테이퍼링을 승인하길 원할 것으로 추정한다. 만약 정말 이달 말 테이퍼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면 파월 의장은 7월 FOMC 회의록에 있었던 걸 반복하기보다 오늘 분명히 더 중요한 힌트를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장은 이날 파월 의장의 발언을 반겼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란 파월 의장의 진단이 틀릴 경우, Fed가 급격히 긴축 방향으로 핸들을 꺾을 위험은 더 커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WSJ에 따르면 이날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올해 4분기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대폭 높였습니다.소비자물가지수(CPI) 전망치를 기존 2.0%(전년 동기)에서 4.8%로 높인 겁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겠지요.

또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향후 인플레이션 예고 지표는 최고로 치달았습니다. 50을 기준으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가르는 건데요. 일시적 인플레이션을 가르키는 지표는 벌써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100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지속적 인플레이션을 가르키는 지표도 90까지 올라왔습니다. 지난달만 해도 75였는데 더 높아진 겁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백악관의 경제자문회의(CEA) 의장이었던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이날 트위터에 "파월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란 주장에 대한 휼륭하고 일관성 있는 논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상대방의 어떤 주장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날 발언은 균형 잡힌 평가라기보다는 (자신의) 명제에 관한 사례에 가깝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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