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출산 대응을 위한 종합 대책을 처음 마련한 2006년만 해도 청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1조원가량의 예산은 대부분 영유아와 자녀양육가구를 직접 지원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2016년 청년 일자리와 주거 예산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되더니, 2018년엔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저출산 대책의 목표가 됐다. 예산은 대폭 늘었지만 저출산 문제 해법은 오히려 모호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 문제 해결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이 사업들은 모두 저출산 대책으로 포함돼 있다. 게임 개발자 육성, 만화 산업 기반 조성을 위한 부천웹툰융합센터 구축, 관광두레 PD 활동 지원 예산도 마찬가지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저출산 예산 42조9003억원 중 이 같은 청년 대상 예산은 26조1672억원으로 60%를 웃돈다. 행복주택 등 청년 주거 예산이 23조3709억원으로 가장 많고, 일자리 예산은 2조5937억원이었다.
반면 올해 영유아 보육료 지원, 어린이집 확충, 아동수당 등 영유아 대상 예산은 8조2283억원에 그쳤다. 청년 예산의 3분의 1 수준이다.
저출산 대책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업이 저출산 대책에 포함된 것은 올해뿐만이 아니다. 2006~2010년에는 템플스테이 등 종교문화행사 지원 사업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됐다. 가족의 여가생활을 지원한다는 취지에서다. 2016~2018년에는 수출 중소기업 지원이, 2019~2020년에는 특수 고용직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사업까지 저출산 예산으로 둔갑했다.
다양한 사업이 저출산 대책에 포함되면서 저출산 대응 예산 총액은 급격히 늘었다. 저출산 대책이 처음 발표된 2006년 1조274억원에서 2016년 13조6633억원으로 처음 10조원대를 돌파한 후 2년 뒤인 2018년 20조1898억원으로 뛰었다. 작년엔 35조7439억원으로 30조원대를, 올해는 42조9003억원으로 40조원대를 연속 돌파했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접근법이 해외 주요국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평가했다. 해외 주요 선진국은 자녀양육 가구와 육아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예정처의 분석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저출산 종합대책을 펴고 있는 일본은 올해 5조9065억엔(약 62조786억원)의 저출산 예산 중 99.0%인 5조8485억엔(약 61조4701억원)을 육아 지원 관련 사업에 쓰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별도의 종합적인 저출산 대책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로 자녀양육가구에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는 127만원의 출생수당과 다자녀 추가수당, 신학기 수당 등을 준다. 독일은 월 33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가 청년 대책을 저출산 예산에 포함시키며 예산 부풀리기를 하고 있는 동안 출산율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예산액이 10조원을 넘기 직전인 2012년 1.30명이었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합계출산율 목표를 폐기한 2018년 0.98명으로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하락하면서 사망자보다 출생아 수가 적은 데드크로스가 처음 발생했다. 올 상반기엔 이 수치가 다시 0.82명으로 낮아졌다.
예정처는 “2006년부터 15년 이상 저출산 대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합계출산율이 오히려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며 “정책 구성과 대상별 재원 배분 등 정책의 적절성을 평가해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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