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시설 재가동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이 있지만, 그렇게 안이하게 볼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들은 넘친다. 북한이 한국, 미국과 정상회담이나 협상 중에도 뒤통수를 쳐 핵탄두를 늘려온 것은 최근 수년간 유엔과 미국 싱크탱크들에 의해 여러 차례 드러났다.
영변 이외 북한 전역에 산재한 고농축우라늄 시설을 가동해온 정황도 포착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과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김정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김정은 스스로 2017년 이후 남북, 미·북 정상회담 중에도 핵을 고도화해왔다고 털어놓은 바 있고, 올초 노동당 대회에선 36번이나 핵을 강조했다. 김정은이 2018년 초 느닷없이 평화카드를 꺼낸 것이 기만전술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면 안이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했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장담했다. 여권은 온갖 북한의 모욕과 도발엔 입을 닫은 채 대북 제재 완화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런 ‘정신승리’ ‘편의적 낙관’이 어디 있나 싶다. 그 결과가 북한의 수십 기 핵무기 보유와 세계 최대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실전 배치 임박이라는 재앙이다.
청와대는 영변 핵시설 재가동은 갑자기 알려진 사실이 아니고 내용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며, 미국과 공조 아래 예의 주시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북한에 핵시설 가동 중단을 요청했는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 북한 핵 공포 속에 사는 마당에 ‘예의 주시’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이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소상히 설명하는 것은 물론 강력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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