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다음 달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본회의 전 앞으로 한 달간 언론계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대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입법 독재'라는 역풍을 우려한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강행에 앞서 '숨 고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야당의 입장 요구에도 침묵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여야 합의가 알려진 뒤 "(언론중재법의) 남용 우려를 검토해야 한다"며 뒤늦은 입장을 내놨다.
여야는 협의체를 구성해 다음 달 26일까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협의체는 양당 국회의원 각 2명과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 각 2명 등 총 8인으로 구성된다. 여야는 협의체 논의를 거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27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상정해 처리하기로 했다.
윤 원내대표는 "양당은 협의기구를 통해 원만한 토론과 간담회 시간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합의를 계기로 여야가 언론 환경을 보다 더 선진화된 환경으로 정착시켜나가는 데 앞장서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나가는 가장 큰 기둥인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며 "국민의 알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중재법 추진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중도층 지지율이 급격히 빠진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예컨대 리얼미터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 30일 31.9%로 전주 대비 0.2%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중도층 지지율은 같은 기간 4.3%포인트 급락한 27.6%를 기록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현시점에서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로 '중도 확장'이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앞서 여당 원로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중재법을 포함한 모든 결정은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한 것도 한몫했다. 법안의 본회의 상정은 의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국회 핵심 관계자는 "박 의장은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9차례나 주재하는 등 여야 합의를 강조했다"며 "여당에는 양보를, 야당에는 대안을 계속 요구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요인으로 박 의장을 지목하는 의원도 있었다.
문 대통령이 언론중재법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안정보장법", "대통령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법" 등 야당의 공세와 "한국은 가짜뉴스 방지법을 대형 언론사를 표적 삼아 사용하는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일 수 있다"는 등 해외 언론의 비판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역시 "국회가 논의할 사안"이라며 그동안 언론중재법에 대해 언급을 피해 왔다.
여야가 가까스로 협의체 구성 등 합의에 다다랐지만, 결국 '줄다리기'만 하다가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히려 협의체 가동이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명분이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국내외 언론계에서 '독소 조항'으로 지목하는 규제를 고수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해당 조항이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협의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언론중재법 강행 의사도 숨기지 않았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협의체가 잘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럼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며 "박 의장도 (다음 달 27일) 상정 처리를 약속했기 때문에 무조건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미현/임도원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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