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애라, 줄여라" 해도…여전한 20조 '좀비세금'

입력 2021-08-31 17:58   수정 2021-09-01 01:12

감사원과 국회가 잇따라 부담금 제도 손질을 주문하고 나섰다. 연간 20조원 넘게 걷히는 준(準)조세(부담금)가 불필요한 분야에서까지 과다 징수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민과 기업의 납부 여건도 악화하고 있는 만큼 각종 부담금에 대해 폐지·감면·면제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코로나로 부담금 부담 커져”
감사원은 31일 ‘주요 부담금 부과·징수 실태’ 감사보고서에서 “코로나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지역경제가 위축돼 부담금 납부에 대해 국민과 기업이 체감하는 부담이 종전보다 커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부담금은 과다하게 징수되면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며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저해하고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필요한 분야에 최소 한도로 부과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을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과하는 준조세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90개 부담금을 통해 총 20조1847억원이 걷혔다.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2조967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전력산업기반기금부담금(1조9718억원),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의 수입부과금(1조1152억원), 농지보전부담금(9373억원), 장애인 고용부담금(7558억원) 순이었다. 부담금 징수액은 2016년 19조7000억원에서 2017년 20조2000억원으로 늘어난 이후 매년 20조원을 넘고 있다.
부과하고 소송당하는 학교용지부담금
감사원은 상당수 부담금이 과다하게 부과되거나 면제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감사 결과 총 18건의 위법·부당 사항이 확인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면적 2만5000㎡ 이상 복합시설에만 부과되는 과밀부담금을 면적 4983㎡ 복합시설에 부과하는 등 48억여원을 과다 부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용지부담금은 면제 기준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학교용지법에 따라 최근 3년 이상 취학 인구가 지속 감소해 학교 신설 수요가 없는 지역에서 주택 개발사업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학교용지부담금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돼 있으나, ‘지역’의 기준이 불명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인천 미추홀구는 모든 개발사업에 일단 부담금을 부과하고, 나중에 소송에서 지면 환급해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교육청은 “부담금의 부과·면제는 구청에서 판단하라”며 미추홀구 등 지방자치단체의 협의 요청을 거부했다. 감사원은 학교용지부담금 면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교육부에 관련 법령 개정을 주문했다.
폐지 권고에도 버티는 정부 부처들
감사원이 징수액을 줄이라고 권고했는데 개선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감사원이 2019년 “국민과 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라”며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요율(전기요금의 3.7%) 인하를 주문했으나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요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부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탈원전으로 인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손실 보전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전력발전에 사용해야 할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탈원전 손실 보전에 쓰는 것은 기금 취지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없애기로 해놓고 유지하는 부담금도 있었다. 환경부는 경유차에 대한 ‘이중 과세’로 지적받고 있는 환경개선부담금을 당초 2016년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그대로 두고 있다. 지난해에만 3317억원이 걷힌 환경개선부담금을 폐지하면 재정 운용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부담금운용평가단’은 관광산업 발전 명목으로 출국자에게 부과하는 출국납부금과 영화산업 발전 명목으로 관람객에게 부과하는 영화 입장권 부담금도 지난 수년간 폐지를 권고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못 들은 체하고 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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