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년 만에 찾아낸 '천주교 순교史'…첫 희생 윤지충 참수형 증거 나왔다

입력 2021-09-01 17:28   수정 2021-09-02 00:37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로 기록된 복자(福者) 윤지충과 권상연, 윤지헌의 유해가 사후 200여 년 만에 발견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일 전주교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는 초남이성지의 바우배기 일대를 정비하던 중 순교자로 추정되는 유해와 유물이 출토됐다”며 “유물을 연구하고, 유해를 면밀하게 검사한 결과 세 복자의 유해로 판명했다”고 발표했다.
230년 만에 확인된 첫 순교자 유해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 신해박해 때 전주 남문 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됐다. 이들은 조선교회에 내려진 제사 금지령을 따르기 위해 신주를 불태우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가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천주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첫 순교자다. 윤지헌은 윤지충의 동생으로, 형이 순교하고 10년 뒤인 1801년 신유박해 때 능지처참형에 처해졌다. 순교 당시 윤지충은 32세, 권상연은 40세, 윤지헌은 37세였다. 이들은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이들의 유해가 발견된 곳은 또 다른 순교 복자 유항검 가족이 1914년 전주 대성동 치명자산성지로 이장되기 전까지 묻혀 있었던 장소다. 전주교구는 이곳을 성역화하는 작업 중 8기의 무연고 묘지를 개장한 결과 5호분과 3호분에서 유해와 함께 ‘백자사발지석’을 발견했다. 지석(誌石)은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 소재를 기록한 것으로, 전문가들이 명문을 판독한 결과 윤지충과 권상연의 인적 사항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해서도 묘소 조성 연대, 출토물의 제작 연대가 두 복자의 순교 시기와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해에 대해서는 성별검사, 치아와 골화도를 통한 연령검사, 해부학적 조사, Y염색체 부계 확인검사(Y-STR)를 통해 윤지충, 권상연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전주교구는 설명했다. 8호분 유해는 사료 검토, 유해 정밀 감식 등을 거쳐 윤지헌과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리하게 잘린 목뼈·팔뼈·대퇴골
유해 분석 과정에서는 윤지충 권상연의 목뼈 부분과 윤지헌의 목뼈, 양쪽 위팔뼈, 왼쪽 대퇴골에서 날카로운 도구로 자른 예기(銳器)손상이 확인됐다. 참수와 능지처참형의 분명한 흔적이라고 전주교구는 설명했다. 능지처참은 죄인의 목을 벤 다음 사지를 찢거나 잘라서 각지로 보내는 형벌이다. 유해를 수습한 이장업체에 따르면 두 순교자는 발견 당시 머리가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으며 이는 머리와 몸통이 분리돼 따로 묻혔음을 보여준다.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이날 담화문을 통해 “유해 발견은 실로 놀라운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천주교를 넘어 조선시대 형벌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문화적 가치도 높다고 평가했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순교자의 유해가 확인된 것은 성인 103위 중 27명, 복자 124위 중 19명뿐이다. 천주교에서 이번 유해 발견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다.

천주교 순교자들은 가족, 친지인 경우가 많았다. 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6대손으로, 고종사촌인 정약용 형제의 가르침으로 천주교에 입교했다. 권상연은 고종사촌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 입교했다. 윤지헌은 형 윤지충을 통해 천주교리를 접했다.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초남이성지는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유항검의 소유지였다. 유항검은 윤지충과는 이종사촌, 권상연과는 내외종간 사촌이다. 중죄인으로 간주돼 끔찍한 죽음을 맞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위험을 무릅쓰고 수습해 자신의 땅에 묻었을 것으로 전주교구는 추정하고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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