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반대하면 체포?…엘살바도르 '화폐 실험' 초읽기 [임현우의 비트코인 나우]

입력 2021-09-02 10:33   수정 2021-09-3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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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의 아이콘' 비트코인이 오는 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에서 세계 최초로 법정통화가 된다. 이 나라에서 비트코인은 미국 달러화와 함께 법정통화 지위를 인정받는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달러와 비트코인을 교환할 수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보급하는 등 준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라 안팎에서 우려와 비판이 가시지 않고 있다. '가격 변동성이 높은 비트코인을 실물경제에 이렇게 덜컥 도입해도 괜찮은 것이냐'는 국제사회의 걱정도 여전하다.

1일 로이터통신은 수도 산살바도르의 한 재래시장에서 상인과 행인들을 인터뷰한 결과 대부분 비트코인을 쓸 뜻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티셔츠와 기념품을 파는 클라우디아 몰리나는 "비트코인에 대해 모른다"며 "어디서 온 것인지, 우리한테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EFE통신도 상점 주인들이 정보 부족 등을 이유로 비트코인에 대해 회의감을 표시했으며, 주요 도시의 상점에서 비트코인 결제 허용 여부 표시를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안드레아 로페스는 "와서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너무 어렵다"며 비트코인을 받을지 말지를 아직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엘살바도르의 '법정화폐 실험'은 지난 6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주도 아래 속전속결로 법안이 처리되며 가시화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활용하면 이민자들의 본국 송금이 훨씬 저렴하고 편리해지며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95위인 엘살바도르는 '콜론'이라는 법정화폐를 쓰다가 2001년 미국 달러화로 대체했다. 국민의 70%가 기존 금융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있고, 미국 등 해외 이민자들이 보내오는 송금액이 지난해 GDP의 23%를 차지했다.


정부는 비트코인 사용을 활성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우선 전국 곳곳에 비트코인을 달러로 입출금할 수 있는 ATM 200대와 지점 50곳을 설치했다. 비트코인과 달러화의 교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1억5000만달러(약 17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신탁 기금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암호화폐 지갑 앱 '치보'(Chivo)를 처음 사용하는 국민들에게 30달러어치 비트코인을 에어드롭(무상 지급)한다.

부켈레 대통령은 국영 전력회사를 통해 비트코인 채굴업을 육성한다거나, 3BTC를 낸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부여하겠다는 등의 아이디어를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6월부터 정식 도입을 며칠 앞둔 지금까지 비판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날도 산살바도르 의사당 앞에서는 300여명의 시위대가 법안 폐기를 요구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비트코인 반대'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선 록시 에르난데스는 "대부분의 국민은 비트코인 사용을 원치 않는 데다 상점이 비트코인 결제를 허용하는 것이 의무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당초 법안은 상점이 비트코인 결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명시했으나, 이후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 사용이 의무가 아니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엘살바도르에서는 비트코인 도입을 비판해온 암호화폐 전문가가 경찰에 한때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경찰은 그를 금융사기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부켈레 정권의 반대파 탄압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은 엘살바도르의 결정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급등락을 반복하는 비트코인의 속성상 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고, 돈세탁 등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엘살바도르는 범죄집단이 기승을 부리고 치안이 불안한 나라로 꼽힌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런 비판을 일축하며 비트코인 실험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2019년 엘살바도르의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된 당선된 부켈레는 1981년생 젊은 정치인이다. 암호화폐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SNS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에게 반기를 든 인사를 축출하는 등 독재자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비트코인이 엘살바도르 경제를 디지털화하고 미국의 투자를 늘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법정화폐 채택은 높은 변동성 때문에 부정적"이라고 했다.


IMF는 지난달 말 "암호화폐를 법정통화로 취급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암호화폐 업계의 유명 애널리스트 플랜비(Plan B)는 트위터에서 "비트코인보다 달러가 더 위험하다"며 "끝을 모르는 암호화폐 평가절하야말로 현명하지 못한 길"이라고 받아쳤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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