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는 주주만 만족시키면 되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로 기업 경영의 목표와 방향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기업과 관련된 모든 종사자와 공존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기업의 공익적 책임을 중시해 기업 경영에 근로자, 소비자단체 등 주요 이해관계자가 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글로벌 주요 기업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가운데, 지난달 미국의 한 젊은 경영자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책 《오크 주식회사(Woke, Inc.)》를 출간해 화제다. ‘오크(woke)’는 인종이나 젠더 등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깨어 있는’의 의미로 최근 미국 사회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책은 미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부르짖으며 ‘깨어있는 유사 정부(woke parallel government)’ 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도발적인 책을 쓴 주인공 비벡 라마스와미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전환(DT) 기술 등을 활용한 신약 개발 기술로 유명한 혁신 바이오 기업 로이반트의 창업자이자 경영책임자다.
이 책은 일종의 ‘내부자 고발’이다. 수십억달러 규모의 기업을 설립하고, 바이오테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활약하고, 20대에 대형 헤지펀드 책임자를 지내고, 하버드대와 예일대에서 공부한 엘리트 출신 저자는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대기업의 이사진 회의실, 5성급 호텔의 콘퍼런스룸, 아이비리그의 강의실, 그리고 불투명한 비영리단체의 내부를 공개하면서 지금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형 사기극의 전모를 밝힌다. 이 책은 ‘비즈니스와 정치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준 책’이란 평가를 받으며 미국 경영계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경제, 문화 전반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 힘은 우리가 매일 마시는 모닝커피부터 매일 신는 신발 한 켤레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도 교묘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 사회를 장악한 이 강력한 힘이 바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다.
책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이념이 우리에게 나은 미래와 친환경적인 삶을 제안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지만, 기업과 정치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이 이념이 허울만 좋을 뿐 우리의 돈과 목소리, 정체성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폭로한다. 의미와 가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고 있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책은 미국의 엘리트주의가 만들어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냉소주의로 시작하지만 새로운 자본주의의 희망과 대안도 함께 제안한다. ‘정치의 비즈니스화’ 또는 ‘비즈니스의 정치화’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경고하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더욱 확실하게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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