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을 2일 구속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지 20일 만이다. 피의자인 양 위원장은 영장이 발부된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동안 기자회견 등 공식 석상에 수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은 그런 양 위원장에 대해 어떤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20일 만에야 영장을 집행한 것이다. “경찰이 민주노총 눈치를 보면서 유독 느슨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양 위원장은 지난 5~7월 서울 도심에서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위반 등)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5월 ‘노동절 대회’에 이어 6월 ‘택배 상경 투쟁’ 등을 벌였다.
7월 3일에는 조합원 8000여 명이 서울 종로 거리 일대에서 집회를 열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6개월 만에 최다(800여 명)를 기록할 때였다. 집회 당일 노조원 23명은 집시법·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집회 직후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민주노총 집회 수사에 나섰다. 집회 책임자인 양 위원장에게 같은 달 4, 9, 16일 총 세 차례 출석을 요구했지만 양 위원장은 모두 거부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달 6일 양 위원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같은 달 13일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이 영장 집행을 머뭇거린 사이 양 위원장은 구속 피의자 신분임에도 공식 일정을 이어갔다. 지난달 23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30일부터는 사흘 연속 대국회 요구 등 기자회견에 세 차례 참석했다.
민주노총 산하 지부 다른 불법 집회에 대한 경찰의 태도도 비슷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00여 명은 지난달 23일 충남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한 뒤 11일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비정규직 직원을 본사가 직접 고용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거리두기 3단계인 당진에서는 50명 미만 집회만 가능하다. 그런데도 경찰은 병력 600명을 배치하고 강제 해산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경찰 수사가 민주노총에만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7월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이 1인 차량 시위를 할 때 서울 도심에 검문소 25개를 설치해 원천 봉쇄했다. 이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김기홍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달 25일 부산에서 벌어진 비슷한 시위와 관련해서도 “주최자와 참가자에게는 감염병예방법, 집시법 위반으로 대처하고, 집회 후 채증자료를 분석해 확인되는 불법에 대해서는 엄벌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 간 관계는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친노동 기조를 펴왔지만, 최근 최저임금 인상 등 몇몇 쟁점 사항을 두고 민주노총과 마찰을 빚어왔다. 민주노총은 2일 입장문을 내고 “(양 위원장 구속은) 문재인 정권의 전쟁 선포”라며 “예정된 총파업을 그대로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된 것은 양 위원장을 포함해 총 여섯 번이다. 권영길 위원장(1995년), 단병호 위원장(2001년), 이석행 위원장(2009년), 한상균 위원장(2015년), 김명환 위원장(2019년)이 구속됐다.
양길성/백승현/황정환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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