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오는 29일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다음날인 30일 총재 임기가 끝나는 대로 총리직에서도 물러나기로 했다. 지난해 9월 16일 출범한 스가 내각이 1년여 만에 끝나게 된 것이다.
취임 직후 스가 내각은 역대 정권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60%대의 지지를 받았다. 휴대폰 요금을 인하하고 디지털청 설립을 추진하는 등 피부로 와닿는 정책으로 호평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대면 정상회담 파트너로 선택되며 “외교에는 약하다”는 지적도 걷어냈다.
지난달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스가 내각 지지율은 26%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가에서 지지율 30% 선은 정권 유지의 하한선으로 여겨진다.
장기집권을 꿈꾸며 그렸던 시나리오도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꼬였다. 스가 총리는 7~9월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경제 회복을 장기집권 카드로 구상했다. 이를 계기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시행하면 무난히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총선에서 승리하면 자민당 총재 선거도 무투표로 당선돼 연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스가 총리가 도쿄올림픽 강행을 고집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도쿄의 경우 올해 평시가 28일에 불과했다. 긴급사태와 준(準)긴급사태인 만연방지 중점대책을 반복한 탓이다. 이런 조치도 올림픽 개최를 위한 무리수로 지적됐다.
기대와 달리 올림픽은 스가 내각을 좌초시킨 요인이 됐다. 올림픽을 전후해 일본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는 전문가들조차 “제어불능 상황”이라고 손을 들면서 긴급사태가 전국 47개 지역 중 21개 지역으로 확대됐다. 취임 일성으로 ‘코로나19 수습과 경제 재건’을 내세웠던 스가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긴급사태를 수차례 연장하면서 스가 총리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지난달엔 자신의 지역구인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서 스가 총리가 전면 지원한 후보가 야당에 패했다. 초선부터 3선까지 지역 기반이 약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스가를 간판으로는 오는 10~11월 예정인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스가 총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당 집행부를 교체하고 총재 선거를 중의원 선거 이후로 미루는 방안을 추진했다. 분위기를 바꿔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당내 반발로 모든 시도가 좌절되면서 연임의 꿈을 접게 됐다.
이시바 전 간사장과 고노 행정개혁상은 높은 대중적 인기가 경쟁력으로 꼽힌다. 지난달 말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차기 총리 적합도 조사에서 두 사람은 16%의 지지율로 공동 1위에 올랐다. 이번 총재 선거는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들의 표가 모두 반영되기 때문에 여론의 지지율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스가 총리의 사임으로 10월 17일이 유력했던 총선 일정도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 총리가 10월 임시국회를 소집해서 의회를 해산하는 형태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선거 일정상 총선이 11월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중의원 임기는 10월 21일까지로 일본의 공직선거법상 총선은 11월 28일까지 실시해야 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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