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짜리 돈까스 한 접시 먹는데…4만원 들었어요"[안혜원의 집에서 돈벌기]

입력 2021-09-04 06:57   수정 2021-09-05 21:30



여름휴가차 방문한 제주도에서 유명 돈까스 맛집 ‘연돈’에 방문하고 싶었던 회사원 김모 씨. 인기 맛집인 만큼 가고 싶다고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 식당을 키워드로 검색을 하던 김 씨는 매일 저녁 다음날 식사를 위한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8시 예약이 시작되자마자 예약 시스템에 접속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번번히 실패.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아무리 클릭을 해봐도 예약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김 씨는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접속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좌절한 김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도대체 연돈 예약은 누가 성공하는 건가요?”라며 울분에 찬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던 중 댓글이 달렸습니다. 예약에 성공했다며 ‘대리 예약'을 해주겠다는 얘기였습니다. 알고 보니 당근마켓 등 중고 거래 사이트에선 연돈 예약권이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대신 예약을 해주는 값은 2인 테이블 기준 3만~5만원. 연돈에서는 원격 줄 서기 앱(애플리케이션) '테이블링'으로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대리 예약을 하는 방법은 이 앱의 허점을 이용하는 겁니다. 대리 예약을 하는 업자가 제주 지역에서 이 앱에 접속해 예약을 한 다음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를 넘겨줍니다. 그 다음에 구매자가 예약권 판매업자의 계정에서 본인 핸드폰을 통해 인증을 하면 식당에 방문할 수 있습니다.

김씨는 휴가 나흘 째가 돼서야 돈까스를 먹어볼 수 있었습니다. 돈까스 한 접시를 먹기 위해 음식값 만원에 예약 비용 3만원을 더해 총 4만원이 들었습니다.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예약 과정에서 웃돈을 주고 식사를 한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다”며 “이렇게 업자들이 예약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실제 식당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약을 하겠나”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 식당은 코로나 4차 대유행 여파로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식당 예약이 전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엔 직접 식사를 하려는 이들과 대리 예약으로 이윤을 남기려 하는 이들이 함께 밀려들기 때문입니다. 예약이 가능한 시간이 되자마자 ’즉시예약‘ 버튼을 클릭해도 곧장 ’예약 마감‘ 알림이 뜨기 일쑤입니다.

예약 시스템 이용에 능숙한 대리 예약업자들만 이득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4일 현재에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연돈‘이라는 키워드만 검색해도 ’대리 예약을 해주겠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도 “대리 예약을 해 돈까스를 먹었다” “직접 예약을 하려면 어지간한 인기 콘서트 티케팅보다 어렵다고 하더라” 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대리 예약업자가 하루에 한 건 씩 3~5만원씩 받는다면 10일만 예약에 성공해 이 권리를 양도한다면 30만~50만원은 손쉽게 벌 수 있는 셈입니다. 이 식당의 돈까스 가격은 9000원에서 1만원에 불과합니다.

이미 이 같은 ‘대리예약 편법'은 연돈같이 예약이 어려운 인기 식당은 물론 뮤지컬·콘서트 등 공연, 심지어 샤넬·에르메스 등 명품까지 성행하면서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편법 때문에 정작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순서가 밀리거나 이용 기회를 뺏기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양도 사기도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중고 거래 카페 등에선 심심치 않게 "예약 양도 사기에 당했다"는 글이 올라옵니다. 최근 인기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헤드윅‘을 관람하고 싶었던 박재들 씨(38·가명)는 예매 사이트에서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여러번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중고 거래 커뮤니티에서 웃돈을 주고 티켓을 구매했지만 사기를 당했습니다.

박 씨는 "상대방을 믿고 입금했는데 그 어떤 것도 전달받지 못한 채 판매자와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박 씨는 다른 예약자에게 티켓을 구매해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티켓 두 장의 가격은 20여만원 남짓. 사기를 당한 비용과 웃돈을 주고 구매한 티켓값을 모두 더하면 60만원이 넘습니다. 실제 정가보다 40만원은 더 주고 공연을 본 셈입니다.

다만 유통업계에서는 각종 부작용을 떠나 이 같은 상황을 내심 반기는 눈치도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매출 또한 덩달아 늘어나니 마케팅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도한 '대리 예약'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지만 한동안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예약 대란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 입에 관련 이슈가 오르내리면서 마케팅 효과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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