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온전히 나를 사랑할 때 복리로 불어나는 매력 자본…설렘을 파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두드러져

입력 2021-09-06 09:00  


툭 튀어나온 배, 처진 팔뚝 살 등 외모에 자신감이 없었던 영화 ‘아이 필 프리티’의 주인공 르네(에이미 슈머 분). 명품 화장품 브랜드인 ‘릴리 르클레어’의 온라인 지부에서 일하는 그는 도심 한복판에 화려하게 장식된 본사의 채용 공고 소식에 주춤거린다. 2010년 캐서린 하킴 런던정치경제대 교수가 제시한 개념인 ‘매력자본’이 없다고 좌절해서다. 하킴 교수가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매력자본은 외모, 섹시한 매력(행동), 유머감각, 활력, 표현력, 성적 능력 등으로 매력도 노동이나 돈처럼 부 명예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낳는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외모와 연봉의 높은 상관관계
호주 멜버른대에서는 2009년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외모와 연봉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문을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평균보다 잘생겼다고 평가한 그룹은 평균 91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었고, 스스로 평균보다 못생겼다고 한 그룹은 평균 5500만원을 벌고 있었다. 외모가 3600만원의 연봉 차이를 만들었다. 식이요법과 운동, 화장품, 향수, 성형수술 등 매력자본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수두룩한 현대사회에선 <그래프>와 같이 외모 자본의 공급곡선은 날이 갈수록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헬스장 자전거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르네. 정신을 잃었다 되찾은 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의 허벅지는 누구보다 매끈했고 팔은 가늘었다. 머리를 다치며 자신이 예쁘다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예뻐졌다며 자신감이 충만해진 르네는 곧장 릴리 르클레어 본사로 달려가 이력서를 냈다. 당찬 모습으로 면접까지 봤다. 본사 대표 에이버리 르클레어(미셸 윌리엄스 분)는 통통한 외모에도 자신감을 가진 르네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르네는 본사에서 정식으로 일하게 된다.
매력자본은 자신감으로부터 온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러, 르네는 화장품 개발 행사에서 발표자로 나선다. 르네가 매력자본을 발판으로 본사에서도 승승장구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화장품의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 자신의 사진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프레젠테이션에 띄웠다. 사진을 비교한 순간 그녀는 놀랐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과거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같은 사람이었다. “마법이 아니었어. 둘 다 나였어. 나를 의심하지 않았을 뿐이야.”

르네가 처음에 그랬듯 우리는 학교를 다니고 사회로 나오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눈치 보며, 움츠러든다. 어렸을 적 순박한 웃음도 누가 볼까 두려워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춰둔다. 거울 속엔 혐오스러운 아무개가 있을 뿐이다. 르네는 발표를 마치며 담담히 말했다. “나를 의심하던 날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 그런 순간들을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로 사는 게 자랑스러워요.” 그녀는 더욱 단단한 매력자본을 갖게 됐다.
매력자본이 중시되는 엔터산업
매력자본은 어느 직장, 어느 산업에서도 작동한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선 매력자본이 더욱 잘 활용되는 경우들이 있다. 매력자본을 가진 르네가 릴리 르클레어에서 이상하리만치 잘나간 것은 그곳이 화장품 회사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패션, 화장품 분야는 매력자본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매력자본’ 개념을 제안한 캐서린 하킴 런던정경대 교수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이야말로 매력자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분야”라고 했다. 엔터테인먼트산업은 음악, 영화, 드라마 등 감성적 콘텐츠 판매가 주업인 만큼 매력자본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음악도 좋아야 하지만 가수도 호감을 끌어야 한다. 영화제작자는 매력적인 배우를 캐스팅하고 나서야 근심걱정을 내려놓는다. 가수, 배우의 매력이 콘텐츠보다 중요할 때도 많다.

K팝은 이를 부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매력자본을 시스템적으로 길러내면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기획사-아이돌 시스템’은 K팝이 성장한 원동력이었다. JYP, SM 등의 기획사는 연습생을 발탁해 음악과 춤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부터 매력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가르친다. 기획사는 매력자본 생산에 투자하는 셈이다. 한류콘텐츠 수출액이 2016년 75억6000만달러에서 2019년 123억1900만달러로 급증한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은 K팝의 매력자본이 제대로 확인된 순간이다. 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지난해 한국 음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정상에 오르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획사 빅히트의 매력자본 양성 시스템이 있다. 빅히트는 ‘자율적인 소통 시스템’, ‘꼼꼼한 SNS 관리 시스템’ 등 체계적으로 BTS 멤버들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BTS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그들의 뛰어난 음악성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미국인들이 알지 못했던 K팝만의 매력자본을 제대로 보여준 영향이 클 것이다.

구민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
① 매력자본은 우리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통용될 수 있을까.

② 자신감은 실력을 증강시키는 촉매일까, 실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허풍에 불과할까.

③ 나라면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고 외모를 가꾸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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