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국내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들을 대상으로 "오는 17일까지 원화 거래 제거 여부를 공지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영업 신고 기한인 24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원화 거래를 제거해서라도 신고를 수리하려는 거래소들을 고려한 처사로 풀이된다.
블루밍비트가 지난 3일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달 19일 국내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를 포함해 신고 접수를 앞둔 가상자산 사업자(VASP) 35곳을 대상으로 "일부 영업 종료(원화마켓 제거 등) 결정, 미신고 결정, 신고 불수리 통보 접수 등으로 영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종료해야 하는 상황 발생 시 회원에게 영업종료일 최소 일주일 전에 공지할 것"이라고 요청했다. 요청 내용 중 '영업종료일'을 신고 기한인 24일로 해석할 때 최소 17일 전까지는 원화 거래 제거 여부를 공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이 앞서 "특금법 개정안에 따른 신고 기한 연장은 없다"고 여러 차례 못 박은 만큼 거래소들은 오는 24일까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외 실명 입출금 계좌를 확보한 후 신고를 수리해야 영업을 이어갈 수 있다. 5일 기준 현재까지 해당 조건을 모두 갖춰 신고를 접수한 거래소는 업비트 단 1곳뿐이다.
일부 거래소들은 추석 연휴를 제외하고 실제 신고할 수 있는 기간이 2주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실명 입출금 계좌를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에 원화 거래를 제거하고 신고를 진행하는 차선책도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휘강 한국블록체인산업협회 이사는 "일단 ISMS 인증을 받은 거래소들은 원화마켓을 제거하면 신고를 접수할 수 있다"며 "우선 원화마켓을 제거한 상태로 신고를 수리한 후에 실명 입출금 계좌를 추가로 확보해 원화마켓을 재개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거래소들은 해당 전략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실태"라고 지적했다.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NH 농협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빗썸·코인원과 코빗의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 재계약 여부를 오는 8일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실명 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중소형 거래소들은 입장이 나뉜 상태다. 고팍스와 한빗코는 신고 기한 마감 직전까지 실명 계좌 확보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고팍스 관계자는 "신고 기한 전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목표로 현재 은행들과 계좌 발급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 중"이라고 말했다.
김성아 한빗코 대표는 블루밍비트와 통화에서 "당연히 실명 계좌 발급 확인서를 받은 후 신고를 접수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은행들과 끝까지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원화 거래를 일단 제거한 후 신고를 접수하겠다는 중소형 거래소들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형 거래소 관계자 A씨는 "솔직한 말로 현재까지 실명 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24일까지 발급받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폐업을 하거나 원화 거래를 제거하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도 조만간 원화 거래를 중단한다는 공지를 올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 B씨는 "비트코인(BTC) 마켓만 운영해서 신고할 수는 있겠다만, 사업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사업을 계속 유지하려면 BTC 마켓 외 원화마켓에 대한 준비도 계속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도 원화마켓 없이 신고한 거래소에 대해 운영이 불안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인식 또한 사업을 진행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영 블루밍비트 기자 jeeyoung@bloomingbi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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