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용의 디지털세상] 디지털 자산이 기업의 경쟁력

입력 2021-09-05 17:40   수정 2021-09-06 00:46

2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세계적인 회계 및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에서 지난달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에 대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디지털 자산이란 암호화폐 혹은 가상화폐라고 불리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블록체인 기반의 코인이다. 딜로이트가 디지털 자산으로 표현한 것은 화폐보다는 자산의 관점에서 암호화폐에 접근하는 것이 글로벌 트렌드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딜로이트의 블록체인 관련 설문조사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중국, 브라질, 홍콩, 싱가포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0개국의 다양한 산업 분야 경영진 128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 정도 규모와 설문 대상이면 디지털 자산에 대한 글로벌 기업의 동향을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돼 그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로 눈에 띄는 것은 이제는 기업들의 디지털 자산 수용이 점점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디지털 자산을 수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설문에 참여한 일반 기업의 81%, 블록체인을 적용해본 금융 분야 기업의 96%가 디지털 자산 수용에 동의했다. 심지어 80% 이상의 기업이 이 같은 시도를 하지 않으면 기업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응답했다. 금융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이미 디지털 자산으로 자금 흐름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디지털 자산을 새로운 산업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관련 신규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둘째는 코로나19가 블록체인, 디지털 자산, 금융서비스 분야를 더욱 확장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조만간 은행들은 암호화폐거래소,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 암호화폐 기반 투자 개발 등 다양한 디지털 자산 기반의 서비스를 개발 및 제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전망은 국내 은행의 암호화폐거래소 계좌 개설조차 규제하는 국내 상황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세계적인 추세가 디지털 자산의 활성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우리도 이를 계속 거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셋째는 물리적 화폐의 디지털 전환은 불가피한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5~10년 내 디지털 자산이 법정 통화를 대체할 것으로 기업들은 판단하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4분의 3이 물리적 화폐가 디지털 화폐로 전환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 일반 산업 종사자의 76%, 디지털 자산을 도입한 금융 산업 종사자의 94%가 이같이 응답했다.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자산을 보관 및 관리해 주는 수탁 서비스가 가장 발전할 것이며 새로운 유형의 결제 채널, 투자, 탈중앙화 금융(DeFi), 자산의 토큰화가 활성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세계적 컨설팅 기업이긴 하지만 한 기업의 보고서대로 미래가 진행될 것인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글로벌 기업들은 디지털 자산 활용이 그들의 경쟁력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이를 활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얼마 전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졸업한 제자가 찾아와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쉽게 교환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고 곧 창업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제자는 창업 준비 과정에서 정부 관련 지원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국내에서는 디지털 자산 관련 서비스 창업의 정부 지원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 한껏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의 같은 또래 젊은이들은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만들어 창업해 불과 3년 만에 거래량이 1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사례가 수차례 알려지고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이 젊은이에게는 납득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해외 기업들은 디지털 자산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하는데, 정부가 디지털 자산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국가 경쟁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걱정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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