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 4대 공적 연금의 지출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 고령화 영향이다. 내년 지출액은 올해보다 6% 이상 늘어 6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문제는 거둬들이는 돈보다 나눠주는 돈이 훨씬 더 많고 더 빨리 증가하는 데 있다.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투입되는 국민 세금은 올해 8조원 수준에서 2025년엔 10조원 이상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내년 재정 투입금을 공적 연금별로 보면 공무원연금 4조7906억원, 군인연금 2조9220억원, 사학연금 9877억원, 국민연금 103억원 등이다.
지출액 증가는 내년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됐다. 기재부가 추산한 2023년 4대 공적 연금 지출액은 65조1174억원으로 내년 지출액보다 9.8% 증가할 전망이다. 2024년엔 70조614억원으로 사상 첫 70조원을 넘고, 2025년 75조3616억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4년간의 연평균 증가율은 7.8%에 이른다.
공적 연금 지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고령화 때문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지출을 충당해야 할 만큼 연금 수입은 들어오고 있지 않다. 저출산 고착화로 납입금을 내야 하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이 증가하지 않아서다.
공적 연금 가운데 적자 문제가 심각한 것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이다. 공무원연금은 1993년부터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몇 차례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적자 폭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내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5조6013억원의 적자 중 54.8%인 3조730억원이 공무원연금 적자다. 공무원연금은 내년 이후에도 적자폭이 계속 커져 2023년엔 5조204억원, 2024년엔 6조132억원, 2025년엔 7조750억원으로 불어난다. 3년 만에 적자 폭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군인연금 적자는 공무원연금보다 20년 이른 1973년 시작됐다. 군인은 연령·계급 정년 제도로 45~56세에 전역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때부터 퇴역연금을 수령한다. 이후 본인이 사망하더라도 유족연금으로 승계되는 구조다. 군사정권 시절 혜택을 크게 늘리면서 기금 규모에 비해 적자 규모가 더 큰 기형적 구조가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로 인해 군인연금 적립금은 이미 고갈됐다. 적자가 발생한 금액만큼 재정이 곧바로 투입돼야 하는 구조다. 내년 군인연금에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은 2조9220억원으로 적자액 2조9077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2025년엔 적자가 3조2763억원으로 늘어나면서 3조2881억원의 정부 재정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됐다.
국민연금은 아직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단계는 아니다. 적립금도 올해 상반기 말 908조원 쌓여 있다. 하지만 흑자 규모는 매년 축소될 것으로 전망됐다. 내년 41조9520억원 흑자에서 2023년 39조3531억원, 2025년 34조6653억원 등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도 새로 추계할 때마다 앞당겨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전망에서는 2042년부터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2020년 기재부는 2041년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봤다. 현 제도가 유지될 경우 적자 발생 후 약 16년이 지난 2057년께부터 누적된 적립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이란 게 정부와 연금재정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적자가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는 공적 연금 개혁에 손을 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차원의 국민연금 개혁안이 나오긴 했지만 청와대에서 퇴짜를 맞았다. 이후 모든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개혁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한데도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국민연금은 ‘폰지 게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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