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올해 벤처투자펀드 운용사 선정을 두고 고민인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사 선정 기준대로 과거 실적을 보고 선정하게 되면, 특정 회사에 투자한 펀드들이 모두 선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2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26일 벤처펀드 위탁운용사 선정과 관련한 제안서 접수를 마감하고 심사에 들어갔다. 총 1500억원의 자금을 3~4곳의 운용사에 나눠주는 이번 투자에 20개 안팎의 운용사들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같은 방식으로 벤처투자펀드 운용사를 선정했다. 당시 선정된 운용사는 네 곳이었다.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
국민연금의 벤처투자펀드가 포함된 국내기타대체 위탁운용사 평가 기준에 따르면 △운용전략과 운용프로세스 △위험관리체계 △운용조직 및 인력의 전문성 등이 모두 합한 정성평가가 40점이고,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정량평가가 60점이다.
정량평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운용실적과 운용규모(30점)이다. 나머지는 △경영안전성 및 제안조건(7점) △운용조직 및 인력수(18점) △투자기회 제공(5점) 등이다. 같은 대체투자 영역이라도 인프라 펀드의 경우 운용실적 배점이 20점인 것과 비교하면, 벤처투자펀드 운용사의 경우 운용실적과 용규모 등의 배점이 크게 높다.
한 벤처펀드 운용사 대표는 "운용실적을 제외한 정성평가나 정량평가의 나머지 항목들은 제안서를 낸 운용사들끼리 거의 대동소이해서 변별력이 크지 않다"면서 "운용규모에 따른 배점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사실상 투자 수익률에서 점수가 벌어진다"고 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지난해 국민연금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네 곳의 운용사들은 모두 '블루홀스튜디오'에 초기 투자한 펀드였다. 블루홀스튜디오는 최근 증시에 상장하며 대박을 낸 크래프톤의 옛 이름이다. 당시 블루홀에 투자한 운용사들은 이후 블루홀이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상장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덩달아 대박을 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블루홀을 담은 운용사와 그렇지 않은 운용사간 수익률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항목들에서 만회가 불가능했다"면서 "사실상 블루홀을 투자한 운용사를 선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고 선정 기준을 바꿀 수도 없어 국민연금도 운용 성과를 보고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운용사 선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톤 외에도 하이브 등 올해 상장해서 대박을 터뜨린 회사들이 많은데, 앞으로도 해당 스타트업에 하나라도 투자한 운용사들이 국민연금의 벤처투자펀드를 싹쓸어갈 것"이라면서 "국민연금도 이런 사항을 인지하고 있어 작년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제안서를 토대로 점수를 배분해 11월께 위탁운용사를 선정, 개별 통보한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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