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사이트 탈 쓴 '온라인 도박장' 주의보

입력 2021-09-06 17:33   수정 2021-09-14 16:39

자영업자 김모씨(58)는 지난해 4월 투자사이트를 가장한 사실상 사기 도박사이트에서 총 1억3000만원을 잃었다. 그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며 피해 사실을 진술했지만 수사관으로부터 “이렇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고 베팅하는 방식의 투자가 말이 되느냐. 사실상 도박임을 알고 입금한 게 아니냐”는 핀잔만 들었다. 그는 “업체 직원이 합법적 금융투자상품이라고 강조했고, 인터넷에 검색해도 불법이라는 말은 없었다”며 허탈해했다.
알고 보니 도박사이트
지난해부터 주식, 암호화폐 등을 중심으로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투자사이트를 가장한 도박사이트에 속아 돈을 잃는 피해자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는 도박사이트인 만큼 피해금액을 되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가 된 사기사이트 운영자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주식, FX마진거래(외환차익거래), 암호화폐, 금 등을 거래하는 곳”이라고 속여 자신들의 사이트로 끌어모은 뒤 피해자들의 돈을 빼돌린다. 아예 수익을 올리지 못하도록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사례도 많다.

대부분 합법적 투자사이트로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홀짝 베팅 등 도박과 비슷하다. 선입금을 유도한 뒤 암호화폐 시세가 전날보다 오를 것 같으면 매수, 내릴 것 같으면 매도에 일정 금액을 걸도록 하는 방식이다.

금융 지식에 어두운 주부, 장·노년층은 대부분 이를 도박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당국의 허가를 받았다”는 직원들의 말만 믿고 선입금하는 투자자가 많다. 이런 업체들은 블로그, 유튜브 등에 합법 업체라고 버젓이 광고할 뿐만 아니라 제도권 금융회사와 협력하고 있으며 유력 언론사 등에서 인정받은 투자사이트라고 속인다.
“피해자를 도박한 사람 취급”
이런 유형의 사이트 운영 업체에 대해 지난해 4월 일부 투자자가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적이 있지만 사기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올 7월 검찰에서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들은 △도박을 투자상품으로 속인 점 △사이트 내 베팅 프로그램 자체가 조작된 점 △약정된 수익금을 지급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사기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고수익을 노리고 베팅하는 방식은 도박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은 “나는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피해자로 인정받기는커녕 도박한 죄로 처벌받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허탈해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변호사)는 “문제가 된 사기사이트는 도박죄만 적용되면 사기죄로 적용될 때보다 형량이 줄고, 속은 사람들도 피해자가 아니라 도박한 사람이 돼버린다”며 “일반적인 사기와 달리 조금씩 돈을 주면서 계속 잃게 한다는 점에서 악질적인 사기”라고 말했다.
처벌강화법안 발의
피해가 커지자 도박을 가장한 투자사이트를 적극 감독·처벌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개정안’을 지난달 26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적발한 신고 사례 가운데 ‘표시광고법’ 위반이 의심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조사할 수 있도록 통보 절차를 신설하는 게 핵심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온라인 불법 사행산업 2만928건 중 불법 온라인도박이 1만8199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불법 스포츠도박 2665건, 불법 복권 46건, 불법 경주류 18건 등이 뒤를 이었다. 위원회 관계자는 “온라인상에서 ‘고소득 보장’ ‘손쉬운 투자’ 등 허위광고에 속아 불법 도박에 참여하는 사례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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