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의문은 경제성에서 출발한다. 수소는 나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산소, 탄소 등과 결합된 화합물 형태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화합물로부터 수소를 분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경제성에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수소를 얻는 방법에 따라 ‘친환경성’과 ‘경제성’도 크게 달라진다. 수소는 색깔이 없지만, 생산방식에 따라 그레이·블루·그린 수소로 불린다. 그레이 수소는 석유화학·철강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 또는 액화천연가스(LNG)를 개질해 뽑는 추출수소를 말한다. 석유화학과 철강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활용 잠재력이 높다. 하지만 수소를 얻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 할 수 없다. 그레이 수소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내는 블루 수소는 친환경성은 보완되지만, 효율감소와 비용증가라는 과제를 안게 된다.
그레이나 블루 수소보다 친환경성이 극대화된 것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생산하는 그린 수소다. 그야말로 ‘탄소 지우개’의 완결판이다. 다만 그레이 수소에 비해 생산단가가 수 배에 달한다는 게 걸림돌이다.
하지만 최근 재생에너지 값이 싸지고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경제성 확보의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를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는 유럽에서는 그린 수소가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구나 수소는 저장과 운송이 가능해 재생에너지 전력의 간헐성이라는 단점을 보완하며 상호 윈윈이 가능해진다.
충분한 양의 수소를 싸게 얻을 수 있는 공급망이 확충되면 수소를 활용하는 모빌리티(운송)와 발전 분야는 급성장이 기대된다. 특히 수소차는 배터리 전기차에 비해 짧은 충전시간, 긴 주행거리 등 강점을 지닌다. 승용차뿐 아니라 버스, 트럭, 선박, 열차, 비행기 등 다양한 운송수단에 이용할 수 있다. 나아가 철강, 화학, 정유산업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오염물질을 줄여 탄소중립 실현을 앞당길 것이다.
‘수소시대가 올까’라는 의문은 ‘수소시대가 얼마나 빨리 올까’라는 기대로 바뀌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여부는 수소 시대를 앞당기고자 하는 탈탄소 의지에 달려 있다. 수소시장은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 관련 제도 개선이 동시에 이뤄질 때 꽃필 수 있다.
한국은 올해 2월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시행하고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수소경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8일에는 수소생태계 구축을 위해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10개 그룹이 주축이 된 수소기업협의체가 공식 출범한다. ‘수소발전의무화제도’의 입법이 확정되면 연료전지를 통한 수소발전 시장은 급격히 확대될 것이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이제는 탈탄소 에너지 기술의 보유 여부가 중요해졌다. 태양광, 풍력, 수소 등 깨끗한 에너지의 경제성, 효율성,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미래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2002년 《수소경제》에서 인간 문명을 재구성할 강력하고 새로운 에너지 체계가 부상하고 있다며 수소시대를 예고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경제성 확보와 기술적 난관 등에 부딪혀 그 열기가 한풀 꺾였던 수소경제에 대한 기대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수소경제는 동 트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2000년대 초 수소 사업에 뛰어든 기업은 ‘얼리 무버’였다. 지금 수소 사업에 뛰어드는 정부와 기업은 얼리 무버는 아닐지언정, 탈탄소 시대의 부를 거머쥘 수 있을 ‘스마트 무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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