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벤처 신약R&D 맡은 '국가과학자 1호' 신희섭 박사

입력 2021-09-07 17:52   수정 2021-09-08 01:33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입니다. 다만 한국이 기초과학 분야에 선진국만큼의 기여를 했는지는 ‘물음표’입니다. 이제는 한국이 기초과학 연구를 위해 크게 기여할 때입니다.”

대한민국 ‘국가과학자 1호’인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IBS) 명예연구위원(71·사진)은 국내 뇌과학 역사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뇌과학 연구에 몸 바친 지 46년째인 원로 과학자지만 최근에는 현역 시절만큼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IBS 출범과 함께 10년간 이끌어온 사회성 연구단 사회성뇌과학그룹 단장직에서 작년 말 물러나면서, 새롭게 벤처기업의 신약 연구개발(R&D)을 맡게 돼 인천 송도와 대전 IBS 단지를 오가는 바쁜 생활을 하게 됐다.

그는 지난 7월에는 국제생리과학연맹(IUPS)이 선정한 생리학 아카데미 1기 펠로 연구자로 선임되기도 했다. IUPS는 1889년 스위스 바젤에서 발족한 저명 학술단체다. 신 위원의 연구 업적을 인정해 신설 아카데미의 펠로 연구원으로 선임한 것이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신 위원은 “기초연구에 평생을 바쳤는데 상용제품 연구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니 무척 설렌다”며 “또 그동안의 연구를 IUPS가 인정해줘 과학자로서도 기쁘다”고 말했다.

신 위원이 합류한 벤처는 성영철 제넥신 회장이 세운 에스엘바이젠이다. 퇴행성 뇌 질환의 유전자 세포치료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신 위원은 “새로운 물질과 그 효과를 연구하는 건 같지만 사람에게 실제 투입을 염두에 둔다는 게 기초연구와의 큰 차이”라며 “연구 아이템을 탐색하고 기획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IBS 단장직에선 물러났지만 평생을 바쳐온 뇌 과학 연구는 IBS에서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 주에 2~3일은 송도, 다른 날은 대전에서 연구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신체적으로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신 위원은 “이 정도는 늘 해오던 일상”이라며 “회사에서 운전기사를 붙여줘서 오갈 때 잠깐씩 눈을 붙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신 위원은 국내 기초과학 연구에서는 상징적인 존재다. 기초과학 연구 활성화를 위해 출범한 IBS의 1호 연구단장이자,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한 국가과학자 1호이기도 하다. ‘탄탄대로’가 정해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기초과학 연구에 이끌려 가운을 벗고 과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의사로서 정해진 삶’ 대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택한 결과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 만큼 신 위원이 기초과학 연구에 갖는 자부심도 남다르다. 그는 “이제는 한국이 기초과학 분야에 크게 기여할 때”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자긍심을 위해 기초과학 연구를 하는 것을 넘어 인류 전체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신 위원의 지론이다.

“한국이 잘하는 응용과학 기술은 기초과학 기술의 토대 위에 이뤄집니다. 어찌 보면 학계의 선구자들이 쌓아 올린 연구의 덕을 한국이 보고 살아온 것이죠. 이제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선 만큼 기초과학에 기여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신 위원은 “당분간은 새로 몸담은 기업에서의 연구와 IBS 연구를 병행할 것”이라며 “보람 있는 결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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