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택배노조는 왜 무리수를 뒀을까

입력 2021-09-08 17:25   수정 2021-09-09 00:13

망자(亡者)가 ‘가해자’로 지목한 측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헛웃음부터 났다. 조사하겠다는 주체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택배노조, 사건은 “노조원들의 집단 괴롭힘을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긴 CJ대한통운 김포장기대리점장 이모씨(40)의 극단적 선택이다. 가해 혐의자들이 속한 조직이 조직원들을 조사하겠다니…. 모순(矛盾)도 이런 모순이 없다.
가해 혐의자 셀프조사한 勞
어쨌든 조사 결과가 궁금해 유심히 살펴봤다. “조합원 일부가 고인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의 글을 단체 대화방에 게시했지만, 폭언·욕설은 없었다”는 것 등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호도이자 유족에 대한 ‘2차 가해’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김포장기대리점 단톡방은 고인과 비노조원 택배기사들에 대한 낯 뜨거운 욕설로 가득했다. “이 × 같은 김포터미널에 × 같은 비리 소장들! × 같은 ××들한테 빌붙어 사는 × 같은 기사님들.” “가진 게 있는 ××가 더하네? 그거 다 기사들 것 훔쳐서 만든 거야.”

“고인은 단체 대화방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워 메시지를 읽지 않기도 했다”는 게 이 대리점 비노조원 택배기사의 생생한 증언이다. “노조원들이 고인이 운영하는 대리점을 아예 접수하려 했다”는 증언과 정황들도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노조가 대체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의아스럽다. 이씨를 돕던 비노조원 택배기사들이 분루를 삼키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는 법적 대응을 예고한 마당이다. 소위 ‘자체 조사’가 진실과 거리가 먼 셀프 면죄부일 뿐이라는 사실이 하루 이틀이면 드러날 것임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 해답은 지난 2일 서울 중구 도심에서 벌어진 코미디 같은 광경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날 경찰은 무려 41개 부대 2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가까스로 구속시켰다.

영장이 발부된 지 20일이 지나는 동안 양 위원장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기자회견 등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정규직 노조가 충남 당진 현대제철 공장을 불법 점거하는데도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쩔쩔매는 경찰의 모습을 택배노조와 김포장기대리점 노조원들은 어떻게 봤을까. ‘진실이 어떻더라도 경찰이 우리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협박·폭언은 그 자체로 극도의 고통이다. ‘공권력조차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고통은 절망으로 바뀐다. “힘겹게 버티던 스토킹, 학교폭력 등의 피해자가 무너질 때가 경찰로부터 해결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좋게 넘어가라는 말을 들을 때”라는 게 서초동 변호사들의 공통된 얘기다.
힘없는 국민 외면하는 공권력
CJ대한통운 대리점주연합회는 “숨진 이씨가 쟁의권 없는 조합원들의 불법파업, 폭언 등을 제지해줄 것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했지만, 고용부와 경찰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괴롭힘이 힘들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일이 여럿 일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이들이 느끼는 절망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직원 50여 명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은 이씨의 죽음에 대해 “경찰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동병상련을 느낀 듯했다. 미안하지만 틀렸다. 공권력이 거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벼랑 끝 피해자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할 수 없다. 미필적 고의라고 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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