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관계도 왕조시대로 회귀하는 듯하다. 방중기간에 ‘혼밥’도 그렇고, 중국 내 서열 20위 수준인 외교장관이 하대하듯 대통령의 팔을 툭툭 친 것도 그렇다. 사드 보복에 이어 요즘 전방위 ‘홍색 규제’도 조짐이 심상치 않다. 결국 시진핑 방한만 학수고대하다 임기를 마치게 생겼다.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여서인가.
정권 대주주 행세하는 민노총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친(親)노조 정책과 입법으로 떠받들었건만 무수한 불법집회, 기물 파괴, 공권력 조롱으로 위세를 부렸다. 최근 위원장이 구속되자 문 정부에 대놓고 ‘선전포고’를 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 세 집단의 공통분모는 정부가 고분고분할수록 더 기세등등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문 정부가 한없이 두려운 사람들도 있다. 정확히는 이념 편향 국정과 입법 폭주, 그 부작용에 질리고 좌절하고 피해 본 이들이다. 고무줄 같은 장기간 거리두기에 벼랑 끝에 매달린 자영업자, ‘이번 생에 집 사긴 틀렸다’는 무주택 전세난민, ‘취업 절벽’에 주저앉은 취업준비생, 온갖 규제폭탄에 잠재범죄자 신세인 기업인에겐 너무도 ‘가혹한 정부’로 비친다.
그런 두 얼굴을 가진 정부도 임기 끝을 향해 달려간다. 섣부른 국정실험의 잔해와 폐허가 나라 곳곳에 가득하다. 부동산,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비정규직 제로 등의 꼬인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나랏빚 1000조원까지 넘겨받을 다음 정부는 대략난감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1년 반은 방역 옥죄기와 돈풀기라는 ‘정권 찬스’를 유감없이 썼다. 2인, 4인, 6인 등 수수께끼 같은 거리두기는 정권 차원에선 만병통치약이겠지만 국민에겐 크나큰 고통이다. 무차별 돈풀기도 ‘하위 88%’까지 왔으니 머잖아 ‘하위 99%’라는 해괴한 숫자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국정 운영을 요즘 경영계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입해보면 ‘정부 실패’가 도드라진다. 탈원전과 태양광 확대 여파로 되레 석탄 발전이 늘고 숲이 대거 잘려나간 게 환경 파괴 아니면 뭔가. 노동·주거·교육·일자리 등 약자가 더 힘겨워진 건 그토록 강조해온 약자 보호라는 사회적 가치를 스스로 부인한 꼴이다. 헌법기관인 장관들은 무력화된 대신 ‘청와대 정부’로 일관해 국가 지배구조까지 흔들었다. 기업이면 퇴출감이다.
그런 점에서 문 정부의 특징은 기업 ESG 경영과는 전혀 딴판인 ‘선거(election), 편가르기(segregation), 배짱(gut)’으로 요약된다. 선거는 자신 있다며 최소 20년은 집권해야 한다는 속내, 반대편을 ‘적폐’로 확실히 가르마를 타는 진영정치, 정책 실패가 드러나도 못 본 척 통계를 분식하고 유리한 것만 내세우는 걸 보면 그런 심증을 가질 만하다.
많은 전문가가 이구동성으로 “기업이 잘했든, 그간 축적된 결과든 잘된 건 다 ‘문 정부 덕’이고 잘못되면 전 정부 탓, 날씨 탓, 코로나 탓, 언론 탓, 국민 탓으로 돌리는 그 후안무치가 놀랍다”고 한다. 무능보다 더 무서운 게 실패가 명백한데도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고 정책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그 일관된 고집이란 얘기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세계 10위권인 한국의 경제 규모와 산업구조가 아무리 정치와 행정이 퇴행해도 한순간 허물어지지 않는 수준이란 점이다. 하지만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기업이 위축되고 기업가정신이 사라져가는 나라에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철없는 여당 의원이 국회의장을 두고 ‘GSGG’라고 쓰는 수준의 저질 정치면 더욱 그럴 것이다.
국리민복을 위한 진정성 있는 정부라면 이 대전환기에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의 ‘SPPP 이론’을 놓고 숙고해야 마땅하다. 국가 의사결정의 최우선 순위는 ‘안보(security), 국력(power), 번영(prosperity), 국격(prestige)’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말년이란 게 없다. 임기 막바지까지 위기 극복 정부로서 사명을 다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모든 게 혼란스러운 지금, 이 말만큼은 부디 액면 그대로이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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